시장, 추억을 쌓다(5) 명신주단 강대운 아재
시장, 추억을 쌓다(5) 명신주단 강대운 아재
  • 백지영
  • 승인 2019.07.15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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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장,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내 삶의 전부”

발품을 통해 완성된 남다른 한복
바싹 타버린 가게…시련을 기회로
한달간 한복 현장 누비며 견문 넓혀
시장에 기여하고파 한복패션쇼 기획
중국식 옷 유행 우려…전통한복 지켜야
마진 줄여 고객 고마움에 보답하고파

진주 중앙시장 1층, 한복이 멋스럽게 전시된 거리를 걷다 보면 ‘명신주단’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보통 한복집이라고 하면 여 사장님을 생각하기 쉽지만 푸근한 웃음을 지닌 남자 사장님이 이 가게 주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진주중앙시장에서 명신주단을 경영하는 강대운입니다. 29살이었던 1986년부터 62살이 된 지금까지 33년째 이 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대운 아재는 군대 가기 전 2년간 양복이나 양장이 주류를 이루던 원단 관련 일을 했다. 전역 후 결혼을 한 아재는 미래를 위해서 본인 사업을 창업하기로 결정했다.

“한복이 내 취향에 맞고 전망도 있어 보여 택했는데 상당한 고난의 연속이었어. 한복이 그렇게 잘 되지는 않았거든”

당시 한복 가게는 아재가 원단을 구입해서 디자인을 한 다음, 기술팀에 임가공비를 주며 제작을 의뢰한 후 판매를 하는 방식으로 돌아갔다. 기술자 별 특기에 따라 저고리·치마 등을 각각 의뢰해 완성도를 높이고, 기술의 한계에 부딪힐 때면 서울·부산 등을 찾아다니며 희소성 있는 고급 기술을 적용하려 애썼다.

“자꾸 해야 기술이 늘어나는데 진주 시장 바닥이 작다 보니 서울 공방에 맡겨야 하는 옷도 많았어. 어디에 어떤 기술이 나은지 정보는 내가 발품 팔아서 판단해야 했지. 기술에 관해서는 비용이 들더라도 과감하게 투자를 한 결과 남다른 한복을 만들게 됐어”

좋은 색의 고품질 원단을 찾아 열심히 발품을 팔러 다니던 어느 날 시련이 찾아왔다.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점포가 불에 다 타버린 것이다.

“2005년인가 2006년인가에 불이 나서 모든 것이 담겨있는 이 점포가 다 타버렸어. 수리를 위해 한 달 정도 어쩔 수 없이 장사를 못하게 됐는데 일에 매여 있을 때보다 시간이 자유롭잖아. 그때 전국 방방 곳곳을 돌아보자 싶었어”

아재는 그 기간 천연 염색을 잘한다는 공방을 찾아 경북 청도부터 충청도, 서울 광장시장·동대문시장까지 누비고 다녔다. 진주가 실크 산지로 유명하긴 하지만 서울에서는 진주에서는 볼 수 없는 상품들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 한 달 동안 한복 관련 기술을 여기저기 보러 다니면서 견문을 많이 넓힌 것 같애” 위기를 기회로 삼는 순간이었다.

“화재가 났을 때 시장 동료와 지인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 그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어서 좀 더 열심히 일했지”

시장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해야겠다 결심하게 된 아재는 번영회 임원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혼자 잘되는 것보다는 시장이 다 같이 잘돼야 한다는 일념으로 시설부터 상인 교육까지 다방면으로 신경 썼다. 중앙시장 한복 홍보와 더불어 전체적인 기술력 향상을 목표로 한복 패션쇼도 기획했다.

당시 한복 패션쇼에는 15개 업체가 각각 2점 이상의 한복을 출품해 지금의 공영주차장 1층에서 성대하게 열었다. 이후 두 세 차례 더 진행하면서 업체들의 기술도 늘고 노하우도 생겨 유등축제 기간에도 한복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렇게 화려했던 시절도 한 때. 아재는 경기 침체와 시대적 흐름에 따라 한복을 맞추기보다는 잠깐 대여해 입고 마는 소비구조 변화가 못내 아쉽다.

아재는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관광지에서 한복을 입는 유행에 대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너무 전통을 무시하는 디자인과 소재는 지양해야 한다”며 우려했다.

“한복은 전통을 살려 가야 해. 전통한복이나 개량 한복을 입어야 될 곳에서 영 얼토당토않은 한복을 입으면 자리 안 어울리지. 요즘 유행하는 과도한 드레스 풍이나 금박은 중국 방식이야”

한복은 은은하면서도 단아한 멋이 있어야 하는데 기성 제품으로 대거 들어온 중국식 옷이 생태계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며 한속 소비 형태도 변해 왔다. 과거에는 결혼할 때 주변인 예단까지 마련하니 비용 때문에 고가의 한복을 맞추긴 힘들었지만 요즘은 양가 어머니와 신랑·신부로 단출해지면서 고급화됐다.

“한 벌을 해도 예쁘게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찾지. 그런데 근래 5년 정도는 대여가 주도를 하다 보니 너무 고가의 옷은 안 만드는 추세야. 그 탓에 예전처럼 멋스러운 한복은 많이 사라졌지”

한복점은 장기적인 싸움이다. 주기가 2년, 3년은 거뜬히 넘어가다 보니 한번 옷을 구매해간 고객의 기억 속에 확실히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다시 방문한다.

“디자인·원단·색감·가격 다방면으로 다른 가게보다 좋다는 인상을 줘야 해. 한 벌 팔면서 마진율을 따지기보다는 그 소비자에게 적합한 옷을 권유하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다시 방문하지”

아재의 최근 관심사는 새로 창업에 나선 둘째 아들의 사업이다. 요식업을 준비하는 아들에게 아재는 “너무 장사꾼 속으로 하면 안 된다. 우선 안 남아도 많은 사람에게 기억에 남는 상품을 만들어 팔면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온다. 그게 바로 마진이다”라고 강조한다.

“내가 배우고 경험으로 아는 거는 그것밖에 없거든. 눈속임으로 싼 재료 쓰면 안 되고 좋은 재료 써야 한다는 거. 그랬더니 아들이 자기는 천연 재료만 쓴다고 하데. 내가 교육 잘 시킨 것 같애(웃음)”

스스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 가는 아들을 보면 대견하지만 어린 시절 가게에만 매달리느라 하교 후 집에만 있게 한 점이 못내 미안하다. 다행히 구김 없이 자라줘 고맙지만 가끔은 너무 독립적으로 성장한 모습이 서운하기도 하다.

아재는 한복점을 평생 업으로 생각하고 해왔지만 고객에게 본인 의지·생각대로 좋은 옷을 공급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흐려지는 연령대까지 끌고 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내가 창의적으로 주도해서 소비자들에게 좋은 한복을 추천할 수 없는 나이가 되면 깨끗이 물러날 생각이야. 그냥 들고 있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거지”

그 준비의 일환일까. 아재는 올해 목표를 가게를 찾아 주는 고객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것으로 잡았다. 향후 몇 년 간은 한복 품질에 더 신경을 쓰면서 마진을 20~30% 줄여 이익을 고객들에게 돌려준 다음 매장을 정리할 계획이다.

아재는 평생을 바쳐 살아온 중앙시장이 현대화를 통해 옛 명성을 넘어기를 바랐다. “내 30~40년 삶의 터전인 이 시장이 참 고맙지. 보답하기 위해 현대화도 진행하고 시민과 봉사자에게 다양한 혜택을 안겨주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싶어. 구성원 각각의 생각이 다 다르지만 지금부터라도 같이 힘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함께 노력하고 싶어”

이렇게 항상 시장에 대한 걱정과 기대를 안고 살아가는 강대훈 아재에게 중앙시장은 어떤 존재일까.

“삶의 전부지. 여기에 내 인생 모든 것을 담아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전부지. 전부”

시장이 ‘삶의 터전’ 그 이상의 의미로 진하게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글·사진=정호윤 진주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정리=백지영기자



중앙시장의 매력, 골목을 거닐다 - 정호윤 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

중앙시장은 넓다.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지내온 지 3년이 흘렀지만 주로 다니는 길로만 다녀 아직 못 가본 곳이 많다. 구석구석 살펴보기 위해 큰마음먹고 길을 나서본다.

코너를 돌 때마다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크고 작은 골목과 거리들은 이어져 사람들과 물건들이 흐른다. 골목마다 분위기는 제각각이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인적이 드물어 선뜻 발을 들이기 어려운 곳도 있다.

조그만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작고 오래된 점포들과 그만큼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상인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상인은 젊은 사람이 낯선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다 이내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한다.

청년기록단 활동을 하면서 잘 알고 있다고 여기던 공간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삶을 일구어 온 상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니 확실히 시장이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누군가에게는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이곳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니 이만큼 역동적인 곳도 없다고 여겨진다.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다가도 상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과거로 다시 돌아간 듯 들떠있는 상인의 표정이 재미있다. 인터뷰하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던 일, 슬프고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는 들뜨거나 떨리던 상인의 목소리를 느끼며 그에 공감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시장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도 들여다보며 공감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본다.

진주 중앙시장 명신주단 강대운 아재.
 
 
 
명신주단에 오색찬란하게 진열된 보자기와 원단들.
   
정호윤 진주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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