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색창연한 멋스러움, 무진정에서 일상을 벗다
고색창연한 멋스러움, 무진정에서 일상을 벗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7.1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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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이 멈춰지는 한 폭의 수채화
지난 7월 초 함안박물관 앞마당에는 고려시대 연분홍빛의 연꽃, 아라홍련이 개화하기 시작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단아하면서 고귀한 자태가 매력적이다. 수줍은 듯한 소녀의 미소를 품은 아라홍련을 뒤로하고 함안면 괴산리 무진정으로 향했다. 낮기온이 높은 시간에 찾은 무진정은 옛 시간이 정지해 놓은 듯 고목이 예사롭지가 않다.

신비로움이 가득한 연못 속에 비친 반영의 세상이 수정처럼 맑다. ‘이수정’을 걷다 보면 수백 년의 아름드리 나무는 높고도 굳게 뻗은 선비의 기상과 닮았다. 이수정의 또 다른 매력은 섬을 두어 영송루라는 누각을 연결하는 홍예교를 놓아 그 경관이 너무 아름답고 푸르름이 더해 유혹에 벗어나지 못할 정도다.

영송루 아래 작은 생명들이 꿈틀거린다. 신선한 바람이 땀을 식히고 언덕 위 고요한 무진정은 늘 한결같아 운치를 더했다. 이수정을 둘러싼 고목과 정자 그리고 돌다리가 한 폭의 수채화로 자아내듯 아름다움이 그지없다. 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까닭이다. 느림의 미학이다.

이곳은 특히, 매년 사월초파일이면 영송루가 있는 이수정에서 경남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된 함안낙화놀이가 열리는데 불붙은 숯가루가 바람에 날리고 연못에 비쳐 이 장관을 보기 위해 인사인해를 이룬다. 내년에는 밤하늘에 흩날리는 장엄한 불꽃 ‘낙화놀이’를 기약해 본다.

돌다리를 다시 건너면 부자의 효와 충을 기리는 정려각인 부자쌍절각이 있다. 바로 옆, 쓸쓸한 비석이 외롭고 고독해 보였다. 노비였던 대갑이 주인 조계선이 전사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죽음을 전한 후 검암산 절벽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은 연유로 세워진 비석이다. 비석의 이름은 충노대갑지비로 죽어서도 노비의 신분은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이야기는 후세에게 뜻깊게 와닿고 있었다.

이끼가 가득한 돌에 새겨진 ‘무진정’은 그 세월만큼이나 선명하게 드러냈다. 무진정으로 가는 길목 연한 분홍빛을 품은 배롱꽃이 살며시 동정문을 향해 손짓한다.

무진정은 조삼(趙參) 선생이 사화가 빈번했던 조선전기 명현으로서 붕당정치로 여념이 없는 조정의 상황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무진정(無盡亭)을 짓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고 전한다.

정자는 선생의 호를 따서 ‘다함이 없다’, ‘욕심이 없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순하면서 소박함이 곳곳에 묻은 정자는 들문을 올려 고색창연한 멋과 자연스러움을 채웠다. 선생의 곧은 기상이 실렸다.

툇마루에 앉아 가만히 기대어 보면 마음이 평온하다. 불어오는 바람에 잠시 일상을 벗는다.

정자 옆 함안 조씨 문중의 재실인 괴산재가 있고 650m에는 우리나라 고대 목간의 최대 보물창고, 성산산성이 있다. 무진정과 이수정의 조화로움이 고즈넉한 정취를 풍겼다. 이 빼어난 경치를 아름다움에 취해 본 하루다. 무진정에 대해 알고 싶다면 문화관광해설사의 도움을 청하면 된다.

/강상도 시민기자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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