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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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7.1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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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소설가 김지연과 진주논개(4)

의병장과 인연 맺은 논개이야기 속에
숨은 불씨 처럼 커가는 왜군의 무리

시시각각 다가오는 진주성의 비극
역사·가상이 엮여 소설은 이어지고
<소설논개>에서 논개의 태생지와 성장기의 배경은 진주목의 함양, 선학산 아래 도동마을의 영역으로 잡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사이 논개의 어머니는 죽어서 선학산 중턱에 묻혔고, 논개는 동네에서 들어가 살 방이 없어서 선학산 바위굴을 거처로 삼았으나 강진사댁에서 논개를 몸종으로 데려가려는 획책에 의해 더 이상 굴에서 은거할 수 없게 되고 마침 지나던 의병장 강동찬에 의해 구출되었다.

강동찬은 정6품 참상관 벼슬을 지낸 강손만의 독자였다. 그러나 급작스레 부모가 다 돌아가시자 강동찬은 노복들의 종 문서를 불태워 양인으로 만든 후 유일한 재산인 가옥을 팔아 그들이 새 삶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 뒤 강동찬은 의병이 되어 진주 선학산 속의 의병 훈련장까지 오게 되었다. 그의 활 솜씨는 선사라 할 만큼 뛰어났다. 왼손잡이인 거의 백발백중에 가까울 정도의 궁술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때부터 논개는 진주성 변방의 선학산에 위치한 의병 훈련장인 활터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훈련받는 의병들은 예상한 만큼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강동찬과 민구식을 비롯하여 열대여셧명에 불과했고 이들은 이른 새벽에 훈련장으로 와서 신체단련과 활쏘기를 배우고 정오를 전후하여 산을 내려갔다. 그 사이 우여곡절이 있어 논개는 기생이 되고 기생 어머니로부터 기생집을 물려 받아 생활이 자유로왔다. 소설은 다음과 같이 발전한다.

“논개가 머리를 얹었다는 소문이 진주바닥에 쫘악 퍼졌다. 강병찬 의병장이 떠나고 사흘재 되는 날 임진년 정월 초하루여서 사람들은 세시 인사와 설놀이로 떼를 지어 몰려다녔고 발 없는 말은 진주성 안에 빠른 물살처럼 퍼져나갔던 것이다.절세가인 진주 명기논개가 강원도 의병장을 주인으로 맞아 머리를 올리고 어른이 되었다는 소문은 양민 천민 할 것 없이 화젯거리였다.”

그 뒤 강동찬은 전투에서 죽고 논개는 있는 힘이 다빠졌다. “논개는 이른 새벽 희부옇게 미명이 틀 무렵 뒤란 목욕간에서 몸을 정갈하게 씻은 뒤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두 손을 합장했다. 충혼을 불사르고 장렬히 전사한 강동찬과 김시민의 명복을 빌고 전쟁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무하면서 그들의 명복 또한 빌었다. 그리고 전군을 남하시키는 왜적들이 그냥 곱게 자기네땅으로 물러가 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럴수록 논개는 걸인 정예병들의 훈련을 더욱 강화하였다. 그들은 뜨거운 한낮에도 쉬지않고 훈련했고 의기회 회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적에게 던질 돌멩이도 충분하다 싶을 만큼 성벽 밑으로 날라다 쌓았다. 그 모든 대비를 앞장 서서 지휘하며 그녀는 자신의 훈련도 맹렬히 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활을 쏘고 장검을 휘두르며 자신의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연마했다. 뭔가 형체를 알 수 없었지만 피할 수 없는 어떤 운명의 그림자 같은 것이 산더미처럼 덮쳐오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6월이 되면서 왜군의 진주 공격에 대한 소문은 이미 소문이 아니었다. 진주 공격을 위한 적군들의 이동이 구체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경상도에는 기존의 왜군들에 더하여 한성 일대와 강원도 충청도에서 남하한 적군들로 득시글거렸고 이들은 진주성을 공략하기 위해 수군까지 합세하여 김해와 창원 부근으로 속속 집결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명군과 왜군의 수뇌부 간에는 진주성 공격을 두고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명군의 송응창과 제독 이여송은 협상대표 심유경을 내세워 일면 겁박하고 일면 회유하면서 적의 진주성 공격을 만류했으나 왜장 고니시는 자신을 포함한 많은 장수들이 싸울 뜻이 없지만 도요토미의 명령이 워낙 강경하여 어쩔 수 없다 핑계를 대며 공격은 불가피한 일이니 잠시 조선의 관민이 성을 비우고 예봉을 피하라는 계책까지 주었다. 동정군의 부총병 유정은 진주공격에 가장 적극적인 왜장 가토에게 협박에 가까운 글을 보내 단념을 종용했다. 그러나 가토는 이 글을 받고 콧방귀를 뀌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미 피할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왜군의 총공격에 맞서 관군과 의병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창의사 김천일, 충청병사 황진이, 경상 우병사 최경회, 의병장 고종후, 전라 좌의병 부장 장윤, 의병장 이계련 등등이 앞다투어 입성했다……”이때 논개는 무슨 일을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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