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지 않아도 특별한
대단하지 않아도 특별한
  • 경남일보
  • 승인 2019.07.1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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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성(대학생·경상대학교)
학내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기 시작한지 3년, 그 중에서도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보도기사가 아니라 칼럼을 쓰기 시작한지는 1년 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나의 주관을 담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보도 위주의 글이나 기획기사를 쓰며 내 의견은 이러저러하다는 첨언을 붙이고 싶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갈증을 느낄 때 쯤 신문사 편집국장이라는 자리를 맡게 되어 편집국장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그즈음 경남일보 대학생칼럼에 기고를 시작했다. 지금 다시 읽으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수준의 글이지만 당시에는 내 의견을 다른 사람이 읽어준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어찌나 하고 싶은 말이 많던지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늘어놓다보면 정해진 원고 분량을 훌쩍 넘기기도 일쑤였다. 편집국장 임기가 끝난 후에는 감사하게도 여성칼럼 제의를 받아 반년동안 여성과 관련한 여러 이슈들에 대해 써왔다.

그러는 동안 글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졌다. 글에는 ‘나’의 의견을 내놓았지만 그 의견은 지면에 실리는 순간 ‘경상대 신문사’의 의견이 되기도 하였고, 경남지역 대학생의 의견이 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20대 여성의 의견이 되었다. 필자가 쓰는 글에 따라, 이름 뒤에는 내가 속한 집단이 나를 설명해주는 꼬리표로 붙었다.

대표라고 하기에 나는 너무 평범한 사람이었으므로, 내 이름이 적힌 지면이 쌓여갈 동안 나는 내가 한 집단을 대표할 만한 사람인지 고민했다. 글을 쓰는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면 여느 대학생들처럼 제출기한에 쫓기며 과제를 하였고, 공강이면 친구들과 술에 진탕 취하기도, 시험기간에 벼락치기로 밤을 새기도 하였다. 간혹 칼럼을 인상 깊게 읽었다며 학교를 통해 연락이 오던 분들이 있었고, 우연히 봉사활동을 갔다가 신문에서 내 글을 보았다며 알아봐주시던 분도 있었다. 그럴 때면 대단한 사람이 된 기분을 느꼈다. 그러면서 책장에 철학 서적을 몇 권 꽂아두고 먼지가 쌓일라치면 펼쳐보며 나름의 자기 위안을 얻었던 것도 같다. 칼럼을 쓴다고 말 했을 때, 주변에서 대단하다며 비행기를 태워주면 조금 우쭐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집단의 의견을 대표해서 낼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절하거나 우울하진 않았다. 단지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의견도 전해질 수 있다는 것으로 고민은 마침표를 찍었다.

칼럼을 쓰며 공통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말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과 다름없었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여성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체적인 삶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정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이 쓰이는 순간 말은 생각보다 무거워졌다. 그 말이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일부러 좀 더 대단해 보이는 생각을 하려 애쓰기도 하였다. 때로는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나 자신을 설득하며 원고를 써내렸다. 과거에 썼던 미사어구로 꾸며낸 글을 다시 읽으면 왠지 부끄럽기도 하지만 과정이 어찌됐든 생각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지면을 가지는 경우도, 그 평범한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도 많지 않다. 만약 누군가가 지면을 통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줬다면, 그리하여 평범한 대학생, 평범한 여성임에도 본인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었다면, 나는 멋지고 대단하진 않아도 특별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델’이란 것은 평범한 그 누구라도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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