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렇게 멀리까지
누구를 마중 나간 적 없다
육지의 끝까지 가서 불 밝힌 적 없다
그러니 기슭에서 불 끄고 잠드는 사람으로
사납게 뒤척이는 파도나 앓는다.
등대는 항구로 들어오는 배를 위해 낮에는 색깔로 밤에는 불빛으로 그 접안을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시인은 방파제를 내달린 이곳 등대를 대상으로 자아의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는 뒤늦은 후회 하나를 시적 언어로 표출하고 있다. ‘어찌하여 나는 육지의 끝까지 가서 불 밝혀 너를 마중하지 못했을까.’ 그런 뒤 5행에 던져진 ‘파도나 앓는다’라는 문장 속에는 파도의 속성에 빗댄 현재 화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여백의 충만함 앞에서 시인은 그리움의 간격을 화면의 등대까지 몰고 갔다가 돌아온다. 포말의 뒤척이는 파도로 밤을 지새웠을 시간들이 밀려왔다 다시 하얗게 부서진다. 너와 나 사이에 추억이 깊을수록 그리움을 지워나가는 속도는 느린 법, 파도는 여직도 사납게 뒤척이는 중이다. 누구나 가슴의 밑바닥에 감춰진 이름 하나 없을까.
/천융희 시와경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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