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과 소통하는 아파트
이웃집과 소통하는 아파트
  • 경남일보
  • 승인 2019.07.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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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순(수필가)
임정순
임정순

비가 오는 날, 비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구워지는 지짐이를 먹을까. 아니면 수제비를 끓여 볼까라고 생각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동생 우리 수제비 해먹을래?” 위층에 사는 언니의 목소리였다. “언니, 조금 전에 저도 그 생각을 했는데요” 마음이 통한 것이다.

그리하여 연락이 닿은 이웃 동생과 언니들이 모두 우리 집에 모이면서 집안이 시끌벅적 소란스러워졌다. 이웃들은 감자를 깎고 땡초를 썰고 부추를 다듬고 멸치 다시 물을 끓이고 밀가루를 반죽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기 때문에 금방 지짐과 수제비가 만들어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가 이웃집 사람들의 코까지 자극해 지나가는 사람들도 “잔치 하냐” 며 기웃거렸다. 지나가는 이웃의 손을 잡아끌어 집안에 들인 뒤 음식을 내놓았더니 맛있게 먹었다. 그야말로 음식은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한바탕 잔치가 끝나갈 즈음, 나는 내일 담을 계획이었던 열무김치 재료를 모두 꺼냈다. 이웃들은 두 말 없이 마늘을 까고 씻고 보리풀을 끓여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 김치를 만들었다. 음식을 나눠 먹은 뒤 내일 해야 할 일까지 해버린 셈이다. 사람 여럿이 어울려서 음식을 만들고 나누면서 떠들고 웃으면서 이웃집과 정이 쌓여갔다.

요즘 뉴스를 통해 우리나라 곳곳에서 정신질환자들이 무차별적으로 난동을 부려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낭패를 당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나는 이러한 사건 사고들은 이웃 간에 왕래가 없고 소통과 관심이 부족한 탓에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옛말에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고 했다. 과거 시골이나 단독주택에서 생활하던 시절에는 서로 정을 나누며 살았다. 하지만 아파트 문화가 발달하고 각각의 사생활 보호가 우선시 되면서 현관문만 닫으면 이웃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게 다반사다.

문만 닫아버리면 누가 오고 가는지, 누가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제 문을 열자. 아파트 현관문을 열자. 서로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마음으로 이웃과 한번 친해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제비도 끓이고 지짐도 붙여보자. 그래서 옛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음식과 정, 반갑게 인사를 나눠보자. 경계를 넘어 말동무도하고 웃고 즐길 수 있는 정다운 이웃이 돼보자. 나는 오늘도 현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어릴 적 소풍가기 전날 가슴 설레는 그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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