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이른 봄(이규리)
[주강홍의 경일시단] 이른 봄(이규리)
  • 경남일보
  • 승인 2019.07.2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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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이규리)


그 분하고 같은 된장찌개에 숟갈을 넣었을 때



그렇게

아찔할 수가 없었다



냄비 안에서 숟갈이 부딪혔을 때



그렇게

아득할 수가 없었다



먼 곳에서 희미하게 딩딩 종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이것이 끝이라 해도 끝 아니라 해도



다시 된장찌개에 숟갈을 넣었을 때

하얗고 먼 길 하나 휘어져 있었다



같은 아픔을 보게 되리라 손가락이 다 해지리라



어떻게 되든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누추하기 이를 데 없는 곳으로 한 순간이 다가와 연(緣)을 두었고

슬픔을 결심하게 하였으니



지금도 아련히 더듬어 가 보는 그 햇빛 속



수저 소리 흐릿하게 남아 있던 그 점심나절에

내 일 모르듯 벙글던 흰 꽃들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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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부드러운 이른 봄 꽃망울도 미쁜 숨을 고를 오후였을 것이다.

눈빛을 마주하고 생선의 잔가시를 발라주며 언약의 거룩한 말씀은 푸른 싹들을 튀었을 것이다. 숟가락이 마주치는 냄비 안에서 온 몸이 감전되며 오랫동안 같이 가야할 먼 길을 보았을 것이다. 뼈마디가 부딪치는 전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온전한 것들 속에 잔금이 생기고 가고 싶은 길과 가지는 길이 다르듯이 이제 슬픔을 결심한 한 때의 사랑을 햇볕에 말리는 오후, 벙근 꽃들과 희미한 수저소리가 아련한 햇빛 속에 수런거린다. 어느 시인의 고백을 본다.
 
(주강홍 진주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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