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헌 이경석과 매천 황현
백헌 이경석과 매천 황현
  • 경남일보
  • 승인 2019.07.2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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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위(칼럼니스트)
세상 사람들은 모두 많이 배우고 또 큰 업적을 남겨 역사적 인물이 되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그 배운 것을 한탄하면서 살아가거나 배운 것이 원죄되어 스스로 죽음을 결행한 사람도 있다. 병자호란 때의 중신 백헌 이경석(白軒 李景奭)이 그러하고 한말의 선비 매천 황현(梅泉 黃玹) 또한 그러하다.

매천은 “도깨비 나라에 미치광이”만 들끓는 시대를 살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한탄하면서 장원급제가 가져다 준 벼슬의 기회도 저버리고 낙향하여 3000권의 책속에 묻혀 지내면서 47년간의 역사를 들은 대로 본대로 기술하였다. 그것이 바로 ‘매천야록(梅泉野錄)’이다. 그리고는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하는 그 유명한 절명시를 남기고 나라와 운명을 함께 하였다.

백헌 이경석은 청나라의 강압에 못이겨 삼전도(三田渡)비문(대청황제공덕비문)을 다 짓고 나서 자신에게 글을 가르쳐 준 형에게 “글공부를 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수치스러운 마음 등에 없고 백길이나 되는 어계강(語溪江)에 몸을 던지고 싶다”고 하는 시를 지어 평생을 한탄해 마지않았다.

한 인간으로 보면 주어진 운명이고 주어진 사명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배움에서 울어나오는 영혼이 없다면 그 또한 박제된 배움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들의 선조들은 배움을 배움으로 끝내지 않고 자신의 영혼으로 발효시켜 시대에 경종을 울리거나 나라를 구하는 데에 앞장섰다.

작가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의 칸에게 보낼 국서(國書)를 쓰라는 어명을 받은 두 신하의 정경을 이렇게 그리고 있었다.

한 신하는 성첩을 살피러 다니다가 미끄러져 인사불성이 된 데다가 아래가 다 열려 거름 위에서 뒹군 처지인데 어찌 국서를 작성할 수 있겠느냐는 차자(箚子)를 왕에게 올렸다. 이에 조정에서는 참으로 그렇다면 맛 좀 봐라 하면서 똥물이 나오도록 곤장을 쳤다. 그렇게 그는 죽임을 당했다.

또 한 신하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심장이 터져 논둑에서 죽었다. 대신(大臣) 한 사람이 죽은 신하의 집에 찾아가 보았다. 임금이 대신에게 물었다. “국서는 썼다던가?” “종이를 펼쳐 놓고 먹은 갈지 않았사옵니다.” “시작은 한 것인가?” “종이를 펼쳤으니…” “복이 많구나!”

인조는 백헌을 불러 간곡한 부탁을 한다. “저들이 비문을 가지고 우리의 향배를 시험코자 하니 어쩌겠는가? 후일에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도리가 없지 않은가!” 인조 스스로가 삼전도에 마련된 수항단(受降檀)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치루었으니 얼마나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까? 어쩌면 손을 맞잡고 통곡을 했을런지도 모른다.

백헌은 인조와 같은 마음으로 비문에 대한 개작에 개작을 더하여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나서 “한강 백길 벼랑을 진 것(비문을 뜻함)이 부끄럽다”는 시(詩)로 자신의 억울함과 통분함을 토로하였다.

백헌 또한 소설 속의 두 인물이 품었던 마음처럼 갖은 상념에 종이를 펼쳐 놓고 한자도 못 쓸 수도 있는 정경이었다. 그러나 누구인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백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줄 알면서도 그는 기꺼이 낭떠러지로 뛰어 내리면서 스스로를 불살랐다. 스님이 스스로에게 불을 붙여 죽는 소신공양(燒身供養)만 소신공양일까? 백헌의 비문저작 또한 소신공양에 다름 아니라 여겨진다.

이로 미루어 보면 한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은 어느 경우에나 시대가 요구하는 사명에 대해 매천이나 백헌과 같은 소명의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의 운명이사 어찌 되었든 개인의 명리(名利)만을 위해 약삭빠르게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인 것 같아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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