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 앞에서 돌아서다
일주문 앞에서 돌아서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7.2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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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
윤위식
윤위식

딴에는 남정네랍시고 훈장이라도 받을 듯이 휘젓고 다니면서 가시나무 버드나무 가리지 않고 거미줄을 치던 때는 때 묻는 줄 몰랐는데, 흰옷입고 나선 것이 잘못이다 싶어서 노을 진 석양에 산마루에 걸터앉아 굽이굽이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발자국도 흔적 없고 그림자도 간 곳 없어 부질없고 허망하여 마음 둘 곳 없어서, 외진 곳에 돌아앉은 작은 절집을 찾아서 들머리에 닿았더니, ‘삼일수심천재보 백년탐물일조진’ 이라며 삼일만 마음을 닦아도 천년의 보배인데 백년을 탐한 것은 하루아침에 티끌이라며 예전부터 우뚝 섰던 우람한 석비도 이제야 눈에 띈다.

입차문내막존지해(入此門內莫存知解). 이 문 안에 들어와서는 지혜도 갖지 말란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니 아는 것도 버리고 삿된 마음도 비우라는 것이다. 그래 이참에 심신의 치유라도 해보자고 크든 작든 마음의 상처자국을 나름대로 지우면서, 세상사에 끓는 속도 빈지갑을 털듯이 한 점 없이 털어내고 우거져 짙푸른 숲의 향기를 한참이나 들여 마셨더니, 눈을 가렸던 헛것들도 온데 간데 흔적 없고 귓전에 왕왕대던 벌떼들도 사라지며, 청풍이 녹아 배인 산수화 속에서 점 하나 된 내 모습이 비로소 보인다.

원래 작은 점이었기에 천만다행이지 세상 사람들에게 크게 보였더라면 어쩔 뻔 했나. 천방지축 망둥이도 철 따라서 제값하고 소갈머리 밴댕이도 수랏상에 오르는데 만사무능 무위도식 앞가림도 못하면서 고깔을 모로 쓰고 껍죽거린 모습이 얼마나 가관이었을까를 생각하면 겸연쩍고 민망하다. 밖이 그러했으니 안은 또 오죽 했겠나. 빈 낚싯대 걸쳐놓고 월척을 낚으려고 덤비지는 않았는지, 철 따라서 겉포장만 이리저리 바꾸면서 높은 곳은 치켜보고 낮은 곳은 내려다보지는 않았는지, 북데기 힘만 믿고 줄타기는 또 얼마나 하였으며 지름길만 찾아서 헤매지는 않았는지, 눈 감고 귀 막은 채 도리질은 또 얼마나 하였으며 날을 세운 비수는 또 얼마나 던졌는지도 모르면서, 겁도 없이 천왕문 안으로 들락거리며 불보살 앞에서 함부로 무릎 꿇기를 얼마나 하였으며, 하늘에 두 손 모우기를 또 얼마나 했던가를 생각하면 기가 막히는데, 그나마 선현들의 도포자락을 붙잡아 보려고 머리 조아린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산사의 들머리에 닿았는데, 가던 길을 물어도 청산은 말이 없고 뜬구름은 무심한데, 바람은 노송의 가지 끝을 흔들고 계곡물 소리는 마음을 흔드는데 수선스런 7월의 매미소리에 이끌려 오늘도 일주문 앞에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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