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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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7.2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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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소설가 김지연과 진주 논개(5)

7만 민군이 옥쇄한 진주성의 비극
논개의 의열 행적을 그리듯 따라가
남강과 의암이 목격한 그날 죽음을
원고 속으로 옮겨와 소설을 마치다
오늘은 <소설 논개>의 마지막 대목을 읽는 시간이다. 적군의 10만 대병은 6월 15일 김해와 창원에서 수륙으로 병진하여 16일에는 함안을 함락하고 18일 곽재우가 지키고 있던 정암진을 공격하여 다음날 의령마저 무너뜨리고 진주를 코 앞에 두었다

걸인과 기녀들을 이끌고 적의 공격에 대비하던 논개는 뭔가 모를 어수선함을 느꼈다. 김시민이 든든히 버티고 있던 지난 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성안의 장수들이 의욕은 충천한데 그만큼 대비가 치밀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논개는 걸인 정예병들과 훈련받은 기녀들과 함께 동문 쪽에 집결하여 싸우고 있었다. 이날 세 차례나 거듭된 적의 공격때마다 돌과 화살로 적병을 쓰러트리는데 그들의 공이 컸다. 순성장 황진이 진두지휘를 하며 분주히 오가는 중에 언뜻언뜻 보기에도 논개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마지막날 진주성은 피비린내를 진동시키면서 군, 관, 민 7만이 옥쇄하는 결과를 남겼다.

논개쪽으로 와서 들여다보자.

어느새 동녘으로 희부옇게 미명이 트고 있었다. 논개는 서둘러 옥봉동 언덕 위의 기와집으로 달려 올라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방화되거나 파손되지 않아 비교적 온전해 보였다. 논개는 뒤란 목욕간으로 가서 정성 들여 온몸을 씻었다. 열흘 가까이 혈전을 치른데다 연속된 불면으로 지칠 대로 지쳤지만 오랜만에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전신의 피로가 싹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살결이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온몸 구석구석의 때와 땀과 피로를 씻어냈다. 목욕을 마친 그녀는 몸단장을 시작했다. 분가루로 짙게 화장을 하고 볼에 볼그레하게 연지도 직었다. 귓불과 겨드랑이에 중국산 향료도 뿌렸다. 삼단같은 머리채를 땋아 트레머리를 만들고 그 위에 갖은 장식을 꽂았다. 남색 갑사 치마에 위에는 노란색 갑사 저고리를 입었다. 그리고 금지환 은지환 옥지환 등 반지를 있는 대로 거두어 열 손가락 모두에 끼었다. 적들의 대승전 연회에 창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화사하게 단장한 논개가 어디선가 나타나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사뿐히 걸어오자 적장들이 모두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입가로 벙긋 벙긋 웃음을 지으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녀 소향이 승전을 축하드리옵니다.”

논개가 소맷자락을 나부끼며 선녀처럼 날아갈 듯 절을 올리자 모두들 그녀에게 눈을 박은 채 서로 자기 옆으로 오라고 다투어 손짓들을 했다. 그녀는 교태를 머금은 요염한 눈빛으로 좌중을 슬며시 둘러보듯하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른 쪽 난간에 팔을 걸치고 몸을 기댄 채 왼손을 들어 손목을 까불며 이리 오라 손짓하는 적장에게로 다가간다. 곳집에 백성들을 처넣고 불을 질러 산 사람들을 통째로 숯덩이로 만들어버린 바로 그 역삼각형 얼굴의 적장이었다. 술 취한 적장들이 손뼉을 쳐대며 소리 높여 그에게 축하인사를 건네자 그는 자신이 진정한 승자라도 되는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논개가 너무 쉽게 그를 찾아내어 전신이 팽팽하게 긴장되었으나 짐짓 교태를 부리며 그에게 나붓이 절을 올린다. 그리고 수줍은 듯 말끝을 흐리며 “어쩐지 연인 듯 느껴져서…” 하고 유혹의 말을 흘린다. “사람 볼 줄을 아는구나!”와락 그녀를 끌어안았다. 논개는 적장의 품에서 살포시 몸을 빼내면서 강가로 내려가 강바람을 쐬자는 몸짓을 보인다. 적장이 벙글거리는 낯빛으로 고개를 그덕이면서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의암에서 논개는 “네놈을 죽이려고 .....내가 못죽었나니”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를 갈며 쏘아붙이고는 코 앞에 닿는 적장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비로소 정신을 차린 적장이 뒤늦게 허리에 힘을 주며 버텨 보려 했지만 만취한 몸을 뜻대로 가누지 못했다. 적장이 비명을 내질렀다. 짐승 울음 같은 기성을 발작하듯 터뜨렸다.

논개는 마지막 일격으로 있는 힘껏 몸을 솟구쳐 머리로 적장의 턱을 부서져라 들이받곤 사력을 다해 그를 밀어붙인다. 둘은 그대로 얼크러진 채 황토빛 강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사위는 조용했다. 강 건너 대숲은 이날 따라 더욱 짙푸르고 벼랑 위의 돈짝나무는 핏빛처럼 붉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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