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224) 함양 거망산
명산 플러스(224) 함양 거망산
  • 최창민
  • 승인 2019.07.2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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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망산


거망산(擧網山·1184m)은 여름의 산이다. 이 산에 가려면 태장골과 지장골을 오르내려야하고 그사이 진입로엔 천혜의 용추계곡이 있어 산행 중 땀을 씻어 더위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은비단 폭포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고 원시적인 느낌이 나는 초록의 이끼와 고사리지대를 걸어볼 수도 있다.

요즘엔 오렌지 빛의 화려한 나리꽃을 비롯해 수수하면서도 청초한 산수국도 만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으름과 다래, 머루 등 예쁜 여름열매를 찾아볼 수도 있다. 특히 거망산 정상부근에 생명줄과도 같은 거망샘이 있어 산객의 타는 듯한 목마름을 해결하기도 한다. 정상부에는 큰 나무 대신 억새풀이 많이 자란다. 9부 능선의 작은 암릉에선 사방이 트인 주변 산세를 조망할수 있다. 서쪽으로 기백산·금원산이 위치하고 남쪽으로 황석산의 스카이라인이 유장하게 흐른다. 장거리나 거친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은 30㎞가 넘는 황석산 거망산 수망령 금원산 기백산을 하루 만에 돌기도 한다. 네 개의 산에서 흐르는 청류는 지우천, 용추계곡, 용추폭포를 형성한다.

계곡 전체의 용모가 빠지는 데가 없지만 그 중에서도 공중에 쇠다리가 떠 있는 용추사 부근 계곡엔 우람한 기암과 물길이 어우러져 여행객의 감탄을 자아낸다. 용추폭포에서 절정을 이룬 물길은 구르듯 다시 흘러 용소 꺽지소 요강소 매산나소로 이어진다.

6·25전쟁 때 빨치산이 된 남편의 겨울옷을 전하려 산에 들었다가 같은 길을 가게된 정순덕의 활동무대가 거망산이기도 하다.



 
산수국


▲등산로; 장수사 터(일주문)→계곡길 임도→용추폭포 상부→용추계곡→태장골 입구(황석산장)→거망산→거망샘→지장골갈림길→지장골→장수사 터 회귀. 11㎞에 휴식포함 5시간 소요

▲9시 30분, 출발은 장수사 터 일주문 앞 주차장이다. 폐사된 일주문을 통과한 뒤 용추계곡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15분정도 오르면 황석산장식당이 있는 사평마을에 닿는다. 이 사거리에선 정면이 수망령, 오른쪽이 시흥골 기백산방향, 좌측이 태장골, 거망산으로 가는 길이다.

용추사 상부지역 사평엔 현재 7가구가 산다. 과거엔 분교가 있었을 만큼 마을 규모가 컸다. 이 학교는 1968년 개교해 1993년 폐교된 뒤 현재 함양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거망산 3.36㎞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좌측 지우천을 건넌다. 길가에 덩굴더미가 호위하듯 도열해 있다. 자세히 살피면 으름과 산머루가 수줍게 미소 짓는다. 요즘은 보기 드문 산열매들이다.

태장폭포를 지나 물길을 따르면 어느새 물은 안 보이고 물소리만 작게 들리는 너덜 위를 걷게 된다. 이끼를 뒤집어쓴 너덜지대 아래로 물이 흘러간다. 하얀 분을 바르고 있는 으름, 아직은 연초록인 머루와 오미자, 나리꽃, 낡은 태장골 간판, 산수국, 이끼, 너덜…, 도회지에서는 볼 수없는 소중한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태장골을 따라 오르면서 카메라에, 아니 눈과 마음에 담은 자연이다.

밀림 같은 숲을 헤쳐서 1시간 30여분 만에 능선 갈림길에 올라선다. 오른쪽으로 3.3㎞ 지점에 은신치…, 더 멀리 수망령이 있다.

왼쪽 길로 능선을 탄다. 이때부터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도를 보이는 비교적 편안한 길이다.

그러다 다시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게 되는데 거망산 유일의 암릉 길로, 로프가 깔려 있을 만큼 옹골진 지형을 자랑한다.

암릉을 내려섰다가 터널 숲을 뚫고 지나면 12시 10분께 정상에 닿는다. 정상석 앞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던 독사가 ‘스르륵’ 자리를 피했다. 모골이 송연했다.

거망산의 산세는 초가지붕처럼 둥글다. 그래서 정겹다. 주변의 등산로는 초록의 억새와 잡풀이 허리춤까지 온다. 그사이로 물길처럼 뚜렷하게 난 것이 등산로이다. 소 등날처럼 생긴 이 정겨운 능선이 산의 백미(白眉)다. 억새와 바람, 가을풍경이 좋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 등산객이 늘고 있다. 산림유전자 보호구역 희귀식물자생지로 지정돼 있다.



 
암릉에서 본 거망산의 유장한 능선, 오른쪽 끝이 거망산(1184m)이고 정면 봉우리는 1245m의 최고봉이지만 이름이 없다.


거망산은 백두대간에 연결된다. 백두대간 덕유산→남덕유산에서 뻗어 내린 산세가 월봉산 거쳐 수망령을 기점으로 기백·금원산줄기와 거망·황석산을 가른다.

그런데 정상에서 주변을 살피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아무리 봐도 정면에 있는 산봉우리가 거망산보다 높다. 착시현상도 아닌데 어찌된 일일까. 실제 지도상에도 해발이 1245m이다. ‘어라! 거망산이 1184m’ 이 능선의 최고봉 황석산이 1193m인데 그보다 높은 이름없는 암봉의 정체는 뭘까. 의문일 뿐이다. 높아도 이름을 갖지 못해 억울한 앞산을 우러러보면서 거망산을 내려온다. 묘한 기분이다.

5분 만에 지장골 갈림길에 닿는다. 오른쪽 30m지점에 거망샘이 있다. 이 샘에 추억이 있다. 수년전 명산플러스 원조인 100대명산 산행 중 인근 황석산에서 거망산까지 종주한 한 적이 있다. 장시간 산행으로 지쳐갈 무렵 탈진 직전에 생명샘을 만났다. 수량이 많고 물이 차갑다. 물 한 모금으로도 힘든 산행을 보상 받을 수 있을 만큼 감칠맛이 난다.

황석산 직진 길을 눈에만 담고 왼쪽 하산 길을 잡는다. 이 구간은 계곡 3㎞에 가까운 지장골이다. 키 크고 세력 좋은 나무들이 쭉쭉 하늘로 뻗어 햇빛보기가 쉽지 않다. 동굴처럼 생긴 계곡에 물소리와 매미소리가 뒤섞여 환청처럼 들린다.



 
거망샘
나리
어둡고 침침한 곳에 자리 잡은 나리꽃은 진한 오렌지 빛과 빨간 수술을 자랑한다. 벌이든 나비든 어서 내 곁으로 오라.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린 나리의 생존법일 것이다.

나리꽃 말고 이곳에서 지난한 생존의 끈을 부여잡은 이가 있다. 산청군 삼장면 내원리 출신인 그는 6·25 때 지리산에서 조선인민유격대 여성대원으로 활동했다. 18세 꽃다운 나이에 결혼했으나 남편의 산으로 들어가 버리자 남편을 따라 갔다가 그 역시 빨치산이 됐다.

폭풍과도 같은 질곡의 한국현대사를 산 비운의 여성 정순덕(1933년 6월~2004년 4월). 이홍이와 함께 1963년까지 지리산에서 최후까지 버텼으나 11월 12일 새벽 생가 근처인 지리산 삼장면 상내원리에서 국군과 교전 끝에 부상을 입고 체포됐다. 그로부터 41년이 지난 2004년, 그는 72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이곳 거망산에서 국군 1개 소대를 잡아 억류한 뒤 무장해제 시켜서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계곡은 역사의 비극을 알고 있으련만 아직은 무겁게 침묵하고 있다. 영원히 침묵할지도 모르지만.

곳곳에 위치한 폭포와 계곡은 여름철 폭우 시 물이 급격히 불어나 등산로가 끊긴다. 태장골이나 장자벌 등산로를 이용하거나 비가 오면 아예 골짝 산행을 자제해야한다. 길게 느껴진 지장골을 벗어나면 용추계곡이 나타난다. 물가에 주저앉아 탁족으로 피로를 갈무리한다. 2시30분.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으름

 
지장골의 폭포
머루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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