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 김과 오드리 헵번을 기억하는 방법, 사랑
패티 김과 오드리 헵번을 기억하는 방법, 사랑
  • 경남일보
  • 승인 2019.07.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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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임식(LH지역상생협력단장)
최임식 LH지역발전협력단장
최임식 LH지역발전협력단장

패티 김(1938~ )은 대형가수다. 한국을 대표하는 ‘디바’로서의 상찬(賞讚)이다. 실제 키도 167cm에 달해 당시 여성으로서는 상당히 컸다. 시대를 풍미하던 트로트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느긋하고 풍부한 가창력에 실어 음악일생을 일관한 진정한 예술인이다. 21세 때 ‘린다 김’이라는 예명으로 미8군 쇼 무대에 데뷔했으나 이듬해 패티 페이지(Patti Page)를 따라 예명을 패티 김으로 바꿨다. 패티 페이지는 우리에게 <테네시 왈츠(Tennessee Waltz)>와 <체인징 파트너스(Changing Partners)>로 익숙한 1950년대 미국 최고의 여자가수다. 패티 김은 일본에서 만난 작곡가 길옥윤(吉屋 潤)의 달콤한 프로포즈를 받고 결혼한다. 1965년 비 오는 봄날 저녁 길옥윤은 패티 김이 묵고 있던 서울 어느 호텔에 전화를 걸어 <4월이 가면>을 불러준 것. 이듬해 정치인 김종필의 주례로 결혼한 이들 부부는 당시 일반인은 쉽지 않았던 해외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행선지는 유명 휴양관광지가 아닌 전쟁터 베트남! 대중의 사랑으로 사는 절정의 연예인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을 민족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 전장에 아낌없이 바친 것이다. 베트남의 패티 김 부부는 안전한 후방보다 헬기를 타고 가는 전선 근처를 주로 방문했다. 적진을 바로 앞에 둔 최전선에서 신랑 길옥윤의 기타 반주에만 의존하는 대형가수의 공연에 장병들은 열광했다. 한 쪽 다리를 잃은 병사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패티 김은 그의 남은 다리를 붙잡고 ‘그대 없이는 못살아, 나 혼자서는 못살아......’라고 간절하게 노래할 때 병사는 폭포처럼 눈물을 흘렸다. 2013년 11월 27일 주월 한국군 사령관을 4년간 역임한 채명신(蔡命新) 장군의 영결식에서 패티 김은 자원하여 조가(弔歌)를 불렀다.

오드리 헵번(1929~1993)은 20세기 최고의 배우이자 만인의 연인이었다. 발레리나를 꿈꾸던 소녀는 큰 키가 약점이 되어 발레를 포기하고 뉴욕으로 가서 영화배우가 되었다. <로마의 휴일>로 약관 25세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고, <사브리나> <티파니에서 아침을> <파계> 등 명작들에 출연하면서 영화와 패션의 아이콘으로 청춘을 구가했다. 노출과 선정성을 멀리하고 커다란 눈과 귀여운 연기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복잡한 혈통을 가지고 벨기에에서 태어난 그는 유아 때 백일해(百日咳)로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나찌를 따라 집을 나가고 오빠는 나찌에 징집당해 갔다. 2차대전으로 식품수입이 금지된 네덜란드에서 아사(餓死) 직전까지 갔다. 그의 상징인 가녀린 몸매도 그 시련의 영향이다. 1954년 영화배우 멜 퍼러(Mel Ferrer)와의 세기의 결혼은 불행으로 이어졌다. 그는 1989년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영혼은 그대 곁에>에 특별출연한 이후 은막에서 은퇴하고, 이듬해 튤립의 한 품종이 그의 이름을 받았다.

그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은퇴이후 발산되어 지구인을 감동시켰다. 이미 스타덤에 오른 시절부터 봉사조직에 기여해 왔던 그는 1988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지를 강행군하며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온 몸을 바쳤다. 유니세프(UNICEF, 국제아동기금)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약한 자들을 돕고 인류의 양심에 호소했다. 소말리아에서는 거적에 말려있는 어린이 사체들을 보고 충격과 오열로서 언론과 세계인의 관심을 촉구했다. 누적되는 피로를 무릅쓰고 세계 곳곳에서 펼친 활동으로 건강은 악화되고 결국 1993년 아까운 71세에 대장암으로 별세했다. 그의 임종을 지킨 장남 션 헵번 페러(Sean Hepburn Ferrer)는 한국 세월호 사건 이듬해, 세월호 추모 숲 조성을 제안했다. 그의 가족과 3000여명의 국민이 함께하여 현재 진도 팽목항 4.1Km 지점에 ‘세월호 기억의 숲’이 조성되어 있다. 그가 세월호 유가족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진실은 결국 드러날 것이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빼앗은 불의에 맞서 싸운 여러분의 비통한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올 수 있길 바랍니다....그들의 희생으로 우리 사회가 책임있는 연대의식을 만드는 계기가 되길 원합니다”

영혼의 울림을 아름다운 노래로 펼쳐낸 패티 김은 전성기의 자산을 위험을 무릅쓴 전장의 젊은이들에게 바쳤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던 요정 오드리 헵번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폭력과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바쳤다. 예술보다는 사랑이 더 큰 감동을 준다. 그것이 인간과 인류의 양심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사랑의 실천에서 나온다. 동명부대(레바논)와 한빛부대(남수단)에 신혼여행가서 장병들을 위문하는 아이돌 부부, 우리의 헛된 꿈일까? 열애설이 불거질 때마다 ‘아니다’라는 무감각의 거짓말을 하고 ‘세기의 결혼’ 1년 8개월만에 파경을 맞은 어느 연예인 부부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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