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의 경제이야기] 실버영화관
[김흥길의 경제이야기] 실버영화관
  • 경남일보
  • 승인 2019.08.0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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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추억을 파는 극장’

실버영화관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오는 2026년이면 20%를 돌파해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소외되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을 위해 옛날의 향수를 자아내는 명작 고전 영화들을 저렴한 가격에 관람할 수 있는 이른바 실버영화관인 ‘추억을 파는 극장’이 2009년 1월에 문을 열어 노인들의 크나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08년경 영화관련 일을 해오던 김은주 대표가 시사회 준비를 위해 허리우드 극장을 찾았다가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종로3가 인근을 배회하던 노인들이었다. 그래서 김 대표는 ‘노인들을 위한 문화공간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옛 허리우드 극장을 리모델링하여 실버 영화관을 개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어르신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든 들려 행복한 하루를 지낼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시작하게 된 것이다. 김은주 대표는 실버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이 일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망해도 좋다. 기왕이면 젊은 나이에 망하자’라는 다짐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사회적 기업으로 출범한 영화관의 운영은 그리 녹록치가 않았다. 사업 초기에 SK케미칼의 후원을 이끌어내 영화관 월세 절반인 1000만원을 매월 지원받았지만 2000원에 불과한 영화 관람료로는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가 없었다. 사재를 털어가며 버티려 했지만 사업 시작 3년여 만에 신용불량자 위기까지 몰렸다. 영화관에 올릴 작품의 국내 판권을 해외 필름 마켓에서 직접 구입하는데 매년 3억 원 이상 들어가는데다가, 극장 임대료도 내야 한다. 다행히도 건물주가 우호적이라 사정을 봐주고 기업 후원도 받지만, 부담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김 대표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극장을 찾는 단골 노인들의 응원이었다. 김 대표는 “한참 힘들었을 때 아무 때나 갚으라며 3000만원을 그냥 빌려주신 분이 있었고, 땅 문서를 들고 오신 분도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 2009년 6만5000여명으로 시작해 설립 6년 만에 누적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최근 일일 관객 수는 800~1000명으로, 300석 규모의 객석이 종종 매진되기도 한다.

실버영화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노인들의 감퇴된 시력을 감안해 자막 크기는 일반 극장의 1.5배로 키웠고, 자막 위치도 하단 맨 끝이 아닌 중간 아래쯤에 배치했다고 한다. 상영관 안에는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곳곳에 손잡이를 달아뒀고 이동을 도와주는 직원도 있다. 노인세대를 감안해 예매 서비스는 없고, 표는 당일 아침 현장 판매된다. 한편, 사회적 기업이니 만큼 영화관 직원 대부분이 70세를 넘은 노인들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최연장자는 80세를 넘겼는데 개관 초기에 입사해 7년째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연로한 직원들을 고려하여 본인 체력에 맞게 근무 패턴을 조정하기도 한다. “어르신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과 더불어 자부심을 갖고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곳도 만들고 싶다”는 게 그녀의 소망이다.

김 대표는 실버영화관의 지방 확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노하우를 전수하고, 확보하고 있는 상영작도 저렴하게 공급한다”며 “해외에서 1000만원에 영화 판권을 사오면 50만원에 배급해주는 식”이라고 설명한다. 김 대표에 따르면 서울 허리우드 클래식 외에도 인천 미림극장, 경기 안산명화극장, 대구 그레이스실버, 충남 천안 실버명화극장 등의 실버영화관이 있다. 모두가 각자 다른 법인이며, 사회적기업으로 운영 중이거나 인증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사회적기업 경영자는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외부의 지원에 의지하지 않고 자립할 정도의 이윤 추구는 당연하지만, 지나친 수익 추구는 금물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지닌 그녀는 “손님이나 직원보다 경영자가 행복하다면 그건 사회적기업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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