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또다시 통곡하게 하는가…新, 是日也放聲大哭
무엇이 우리를 또다시 통곡하게 하는가…新, 是日也放聲大哭
  • 경남일보
  • 승인 2019.08.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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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호(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객원교수·前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오동호교수


이날을 목 놓아 통곡하게 한다는 ‘시일야방성대곡(
日也放聲大哭)’,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의 논설 제목이다. 글쓴이는 장지연(張志淵), 당시 황성신문의 주필이다. 이후 1909년 10월에 최초의 지역신문 경남일보가 창간되자 주필로 초빙된 언론사의 거목이다. 이 논설로 황성신문은 3달간 정간되고 장지연은 60여일간 투옥되었지만, 온 국민의 울분을 대변한 역사적인 명 논설이다.

그 시절로 한번 돌아가 보자. 무엇이 장지연을 이토록 통곡케 했단 말인가? 그는 이 논설에서 두 가지에 대해 목 놓아 울고 있다. 우선, 을사조약의 굴욕적 내용과 일본의 침략저의에 비분강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개돼지보다 못한 우리정부의 대신들이.....위협에 벌벌 떨면서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된” 을사오적(乙巳五賊)을 통렬히 공박하고 있다.

114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한번 살펴보자. 우리는 신종 을사늑약의 그림자가 우리를 배회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근자에 일본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판결을 빌미로 상호자유무역의 근간이 된 백색국가에서 우리나라를 배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곧 양국 간의 경제전쟁을 의미한다. 그동안 일본은 그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에 대해 사죄와 반성은커녕, 힘을 앞세워 또다시 한반도를 유린하려고 벼르고 있다.

작금에 다시 살아난 장지연이 논설에서 새로운 ‘시일야방성대곡(
日也放聲大哭)’을 쓴다면, 무엇이 그를 또다시 목 놓아 통곡하게 할까?

그의 첫 번째 통곡대상은 아베수상의 파렴치함일 것이다. 아베가 누구인가? 일제시대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연상된다. 조선에 심어놓은 식민지 교육으로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라는 아베 노부유키의 고별사가 인터넷상에 회자되고 있다. 이번 한일간 문제의 핵심은 군국주의의 부활과 반역사성이다. 경제대국으로 커가는 한국과 남북한 교류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한반도 질서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메시지이다.

두 번째 통곡대상은 우리의 오늘날 현실일 것이다. 전쟁 중에 벌어지는 정치권의 국론분열, 언론과 SNS상의 상호비판과 무분별한 주의주장, 내부총질에 대해 울분을 토할 것이다. 국가의 위기를 극복해야할 책임이 있는 정치권과 정부는 과연 어떤 노력을 다하고 있는지 따져 물으면서, 새로운 을사오적에 대해 통렬히 꾸짖을 것이다. 내부분열, 이 것이 아베정부가 노리고 있는 또 하나의 노림수다.

세 번째 통곡대상은 북한정권이다. 민족이 누란의 위기에 빠져있는데 웬 미사일 발사인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하에서 남한정부가 남북한 교류를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있는지는 북한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과 전쟁 중에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미사일을 발사한대서야 어떻게 북한정부를 믿고 남북간, 북미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겠는가? 장지연은 이러한 북한의 몰염치에 대해 분개할 것이다.

자, 다시 살아난 장지연이 목 놓아 통곡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논개의 붉은 피가 오늘도 여전히 흐르고 있는 저 남강에게 그 길을 묻고 싶다. 아니, 답은 간단하다. 일본은 세계사의 이성국가로 돌아와야 하고, 우리는 힘을 하나로 모아 이 경제전쟁에서 이겨내야 하고, 북한은 민족 앞에 겸허함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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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2019-08-08 12:03:23
아베노부유키와 아베신조의 성 한자자체가 틀린데 손자라니 잘 알고 글을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