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극일(克日)과 교육
[교육칼럼] 극일(克日)과 교육
  • 경남일보
  • 승인 2019.08.1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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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택(前 창원교육장)
임성택
임성택

일본의 수출 규제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이 사태가 전화위복이 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결연한 의지를 믿고 싶다.

일본이 처음부터 우리보다 잘 산 게 아니다. 오죽 못났으면 저들을 왜(倭)라고 불렀을까? 그렇지만 일본은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배우고 익혀 국력을 키움에 있어서 우리 정치보다 앞선 것 같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도공(陶工) 등 수많은 장인들이 잡혀갔다. 전쟁이 끝난 후 그 장인들을 송환하고자 할 때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조선에서 ‘인간 이하로 천대받으며 사느니’ 일본에서 ‘대접받으며 사는 것이 낫다’고 절규했음에도 조선의 조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고, 일본은 조선의 기술을 일본화하였다.

조선통신사가 유숙하는 지방에는 지필묵을 한 짐이나 지고 와서는 일필휘지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럴 때에 조선의 알량한 식자들은 자신의 유식을 한껏 뽐내면서 ‘종이 한 두 장이면 될 것을 한 짐이나 지고 왔다’며 일본인들을 얕보고 깔봤다고 한다. 배움에 있어서는 감당하기에 벅찬 짐도 마다않는 일본인들의 속셈과 태도를 꿰뚫어 보지 못한 우리의 지도자가 얼마나 초라한가?

일본 근대화의 기반을 닦은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료마가 간다’를 읽으면 구한말 조선 지도자들의 행태에 부끄러움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저들은 오직 국가 건설을 위해서 고뇌하고 연구하며 토론하고 배우면서 세력을 규합해 나갔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조선을 병탄하였다. 아베의 경제 보복이 오랜 기간 준비한 시나리오라는 보도를 접하면서 조선 침략의 망령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주도면밀하지도 못하고 단회적으로 대응하기 일쑤였다.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에 초등학생의 일본 견학을 동행한 적이 있었다. 일본의 어느 초등학교를 방문하였다. 학교 당국은 우리 학생들을 사전에 정해 둔 학급으로 안내하였다. 그 학급은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면서 한국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나라 아이들의 놀이를 배웠다면서 같이 즐기자고 하는 것이었다. 정작 우리 아이들은 그 놀이에 서툴렀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우리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였다. 우리나라보다 나을 게 없어 보이는 건물의 외관을 보고 우리가 더 잘 사는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잘 정돈된 사물함과 청소도구를 깨끗이 씻어서 말리는 모습을 보면서 힘든 청소는 어른들이 해주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앞선 나라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는 이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기지는 않겠지? 극일은 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 일본 견학이었다.

얼마 전 작은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그곳의 문화해설사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일본인의 고분 도굴 장면이었다. 고분 위의 조선 사람을 가리키면서 엽전 한 두 닢이면 조상의 무덤도 파헤친다고 하여 조선 사람을 ‘엽전’이라고 불렀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자괴감과 함께 울화가 치밀었다. 저들에게 우리는 아직도 ‘엽전’일까? 만약 경제 보복이 ‘한국인 얕보기’에서 비롯되었다면 이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다시 독립운동을 하듯 국력을 키워야 한다. 이 일의 중심에 교육이 자리 잡아야 한다. 분노 중심의 반일과 항일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인을 능가하는 시민정신을 가르치고 기술력을 높여야 한다. 이것은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나 규탄대회보다 훨씬 힘든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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