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치밭목과 무재치기 폭포
지리산 치밭목과 무재치기 폭포
  • 경남일보
  • 승인 2019.08.1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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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전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자연환경해설사)

 

|지리산을 좀 다닌 사람이라면 몇년에 한번은 꼭 들러야 직성이 풀린다고 할까, 숙제를 다했다고 할까 하는 곳이 바로 치밭목이다. 봉우리들의 제국인 지리산에서 길목에 불과해 이름을 내세울 수 없는 치밭목은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화대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거나 고즈녁한 분위기를 찾아 천왕봉을 오가려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치밭목을 거쳐 천왕봉에 오르는 길은 지리산의 정수(精髓)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코스이다.

깨끗한 암반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대원사 계곡길을 걸어, 유평마을의 끝 새재에서 숲길로 접어들면 금방 지리산의 중심에 들어온 듯 숲은 컴컴해진다. 길은 비교적 순한 오르막이고 거름기 많은 토양은 검고 푹신하며, 수풀에 맺힌 이슬이 금방 바짓가랑이를 적신다. 계곡을 만나 무재치기교를 넘으면 탐방로를 벗어나 5분거리 쯤에 무재치기 폭포가 있다는 표지판이 있다. 폭포 방향으로 몸을 틀어 내려서면 곧 협곡의 차가운 기운이 몸을 감싼다. 3층으로 단을 이룬 거대한 수직암반에 여러 개의 두꺼운 물줄기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위에 붙어 흘러내리는 이색적인 경관은 보는 이의 발걸음을 오래 멈추게 하고, 지나간 이의 가슴에 오랫동안 각인된다.

여름철 큰 비가 내린 뒤의 폭포는 여러 줄기가 하나로 합쳐져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되고, 겨울철에도 거대한 빙벽으로 조각되어 시퍼렇고 서늘한 서기(瑞氣)를 뿜어낸다. 무재치기란 말은 본래 ‘물방울이 튀어 무지개를 친다’에서 비롯되었는데, 이 곳의 맑은 공기를 압축해서 판매하고자 했던 어떤 분께서 ‘공기가 너무 좋아 재채기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폭포에서 대략 1㎞를 땀나게 오르면 치밭목대피소이다. 취나물이 많다 해서 취밭으로 불렸다고 하는 이곳에서 식물을 채취하면 불법이다. 하찮게 보이는 어떤 생물들도 자연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치밭목에서 써리봉-중봉-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길은 지리산 동쪽 능선의 장쾌한 척추와 양쪽의 늠름한 갈비뼈, 그리고 산 아래 멀리 첩첩한 산과 마을을 조망하며 걷는 행복한 길이다. 위험한 곳에 계단과 난간이 일부 있을 뿐 대부분 길은 자연 그대로, 옛날 그대로인 추억의 길이다. 거친 숨으로 천왕봉에 올라 사방의 울뚝불뚝한 산줄기를 바라보면 저절로 마음이 탁 트이고 호연지기가 솟아오른다. 여기서 좌절은 도전으로, 절망은 희망으로, 두려움은 용기로 바뀐다. 그래서 지리산에 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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