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해바라기의 碑銘(함형수)
[강재남의 포엠산책] 해바라기의 碑銘(함형수)
  • 경남일보
  • 승인 2019.08.1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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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의 碑銘-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은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폭염이다. 이런 날에도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지금 꽃밭에는 하나의 꽃대에 여섯의 꽃을 단 해바라기가 고스란히 땡볕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 줄기에 한 송이만 피던 꽃을 이제는 몇 송이가 한꺼번에 피는 기이한 현상을 본다. 환경의 변화에 자연이 손상되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하다. 인간의 이기가 어디까지 가려는지, 끝없이 치닫기만 하는 속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그러면서 제목에 눈길을 오래 둔다. 한자로 표기하지 않았다면 해바라기의 비명이 폭염과 함께 여름무덤을 만든다는 오독으로 중의적 기법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을 먼저 본 독자라면 시각적이며 회화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것을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그러면서 화자의 차가운 열망을 감지했을 것이다. 1936년《시인부락》에 발표된「해바라기의 비명」은 죽은 화가인 화자가 시인의 목소리로 강렬한 소망을 표출한다. 단호한 어조를 통해 소망을 강화하면서 생명의 호흡을 더욱 느끼게 한다. 5행의 짧은 형식 속에 ‘말라’ ‘달라’ ‘하라’ 명령형 어미가 화자의 명료한(?) 태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빗돌과 무덤으로 제시되는 차가운 비생명의 세계와 해바라기와 보리밭과 태양 그리고 노고지리의 밝고 정열적인 생명의 대립으로 화자의 태도는 한층 분명해진다. 자신의 무덤에 빗돌 대신 해바라기를 심어달라는 화자는 죽어서도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의지와 열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잠시 인간의 이기를 잊는다. 그리고 폭염의 이상기류에 개입된 여섯의 꽃망울은 화자의 꿈이 간절하기에 어느 것도 버릴 수 없는 깊은 여름의 질문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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