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상림일기:숲은 살아있다
[기고] 상림일기:숲은 살아있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8.1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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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태(함양군 민원봉사과장)
 
상림의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우선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는 호반새와 꾀꼬리를 보자. 꾀꼬리야 어릴 적부터 많이 봐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또 다른 아름다운 소리의 주인공이 호반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성연습이 제대로 안 된 듯한 오리 소리를 내는 원앙은, 조용하게 먹이를 찾거나 멱을 감거나 논두렁에 모여앉아 몸을 말리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꼭 다물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서로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한 착각이 드는데, 그들만의 미세한 날갯짓이나 몸동작 하나만으로 이심전심 통하는가 보다. 그러다 가끔은 화난 듯 혹은 화들짝 뭔가 생각난 듯, 발뒤꿈치를 들고 양 날개를 퍼덕이며 꽥꽥거리는 모습이 볼수록 귀여운 녀석들이다.

상림에는 잿빛 두루미나 흰색 두루미들이 늘씬한 몸매로 우아하게 먹이를 찾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연밭에는 달팽이와 올챙이 미꾸라지 등 먹잇감이 풍부한지 녀석들이 지정 식사장소로 이용하는 듯하다. 두루미는 훤칠한 키와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서두르지 않고 이곳저곳에 다닌다. 적절한 곳에 자리를 잡고 먹이가 경계심을 풀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가, 눈 깜작할 사이에 발버둥치는 먹이를 들어 올리며 짜릿한 손맛, 아니 부리맛(?)을 즐긴다.

잠깐, 조선 영조 때문인 중 청장관(靑莊館) 이덕무 선생 이야기를 빌려오자. 이덕무 선생은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는데, 호를 청장관으로 사용했다. 해오라기와 청장관은 황새목 왜가리 과에 속하는 사촌 간이라고 한다. 해오라기는 밤새도록 먹이를 찾아 강과 저수지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사냥을 하다 보니, 온몸이 물에 젖거나 진흙을 잔뜩 묻힌다고 하는데, 반면 청장관은 먹이가 지나다닐 법한 골목 한 지점을 골라잡은 다음,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경계심을 푼 먹이가 앞을 지나갈 때 잽싸게 낚아챈다고 한다. 권세욕을 버리고 학문에 정진하고자 했던, 그래서 청장관을 닮고자 했던 이덕무 선생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상림을 대표할 수 있는 동물 중 다람쥐는 지천으로 떨어진 도토리나 나무열매를 주워 먹는데, 겨울에 먹을 양식까지 준비하는 부지런함과 민첩함 그리고 귀여운 생김새 때문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으로는, 주워 모은 도토리를 어디다 묻어 두었는지 찾아내지를 못해 식구 모두 겨우내 굶주렸던 경험을 다람쥐 가족들은 한두 번은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나무와 풀들은 어떤가, 겨울이 채 가시기도 전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뚫고 들어온 햇빛 한 조각으로도 싹을 피워 올린 복수초, 현호색 등 지피식물들에서는 처절한 종족보호본능의 몸부림을 발견한다. 온기가 나날이 바뀌어 갈 때마다 실낱같은 햇빛과 틈새의 바람만으로도, 순식간에 아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짧은 생을 쉼 없이 키워낸다.

숲을 지배하고 있는 듯한 참나무, 느티나무, 서어나무 등 키 큰 나무들은 가지 끝이 대부분 숲의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햇빛과 바람을 독점하면서 경쟁자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제 장마가 시작되었다. 가끔 젖은 몸을 말리려고 산책로까지 나타난 화사(花蛇·꽃뱀)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이 시기 영양분 가득한 빗물을 머금은 숲 속은 지극히 평온해 보이지만 부풀어 터질 만큼 에너지가 충만해 있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 수많은 생명체는 저마다 종족 보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규칙을 통해 꼭 필요한 만큼의 개체수를 스스로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상림에서 만나는 어떤 것도 불필요하거나 우연인 것은 없다. 숲 속의 질서는 사람의 방해만 없다면 더욱 건강하고 구성원들은 번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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