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함양-남원 칠암자 길
지리산 함양-남원 칠암자 길
  • 경남일보
  • 승인 2019.08.1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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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전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장, 자연환경해설사)
신용석
신용석

지리산 칠암자 길은 지리산 주능선의 삼각봉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삼정산 자락의 산허리에 점점이 박혀있는 일곱 개 절을 잇는 산길이다. 절의 규모로 엄격하게 따지면 3사(寺)4암(庵)이지만, 깊은 산에 숨은 듯한 고즈녁한 분위기를 강조해서 칠암자 길이라고 부르기 시작해 이제 거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도솔암은 부처님 오신 날에만 길을 개방하는 구역에 있으므로 평소에는 육암자 길이다.

함양군 양정마을에서 시작하는 육암자 산행길은 약 11㎞, 음정마을에서 시작하는 칠암자 산행길은 약 13㎞에 이른다. 산행 초입의 오르막을 제외하곤 대체로 해발 1000m에서 300m까지 내리막 길이지만, 군데 군데 급경사와 축축한 너덜길에서 미끄러짐에 유의해야 한다.

길을 이은 모습이 마치 북두칠성과도 같은 일곱 개 절은 각각 풍경이 다르다. 옛 스님들이 이 터를 어떻게 찾아냈는지 해발 약 1200m의 숲속에 자리한 도솔암의 단정함과 천왕봉 조망, 이름 높은 고승들이 수행했건만 그 흔적들이 소실된 아픔이 서려있는 영원사, 저절로 생각이 깊어지는 상무주암(上無住, 높은 수준의 깨달음)의 고적함, 외가집 원두막 같은 문수암의 정겨움과 아련한 지리산 원경, 양철지붕 흙집이 산골스러운 삼불사와 구름 아래 마을풍경, 물맛이 좋아서 그리 이름 붙인 약수암과 정원같은 채소밭, 시골 논밭과 어우러진 평지가람 실상사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상봉(천왕봉)-중봉-하봉의 실루엣. 약사전에 들어가 쇠로 만든 육중한 불상 뒤에 있는 ‘지리산 생명평화의 춤’ 탱화를 보면서 지리산의 역사와 미래를 음미해 보는 것도 의미있다.

절을 나와 속세로 나가는 개울을 건너기 전에 ‘마치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돌장승과 작별하는 것이 이 산행의 마무리이다.

이처럼 칠암자 길은 지리산 안에서 지리산을 보며 걷는 길이다. 외로운 산길에 문득문득 나타나는 낙락장송과 부처를 닮은 바위와 그 바위에 뿌리를 붙인 야생화를 보며 경외심을 느끼는 사색의 길이다. 비바람이 모질고 안개가 짙어도 그런 풍경을 가슴으로 보며 걷는 명상의 길이다.

그러니 몇십명의 떠들썩한 단체산행이 아니라 서너명이 온 듯 안온 듯 스치되 무언가 울림과 여운이 남는 수행의 길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궁금하더라도, 절 안쪽은 스님들의 조용한 기도처로, 탐방로 바깥쪽은 야생동식물들의 안전한 서식처로 배려하는 공존의 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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