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6·25 참전유공자 김종열·맹숙희 부부
[인터뷰] 6·25 참전유공자 김종열·맹숙희 부부
  • 안병명
  • 승인 2019.08.1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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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전쟁,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올해로 6·25전쟁 69주년을 맞았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그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참혹한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선 대단한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당시 한국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했던 참전 유공자들은 대부분이 고령이거나 이미 숨을 거두어 사라져 가고 있지만, 서부 경남 유일의 생존 6·25 한국전쟁 참전유공자 부부인 함양군 서상면의 김종열(97)·맹숙희(90)부부가 한 말이다.

남편인 김종열 선생은 의용경찰로, 아내인 맹숙희 여사는 간호장교로 처참했던 당시 전쟁에 참전한 인물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 14일 아주 뜻 깊은 행사가 있었다. 경남서부보훈지청과 국립산청호국원에서 부부 참전 유공자 자택을 방문해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 행사를 했다.

노부부는 “종군하고 60년이 넘었는데도 우리를 기억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할 뿐입니다”라며 그저 감사함을 표했다.

젊은 의기로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당당하게 맞섰던 부부. 고령의 나이에도 그 당시 기백은 여전히 남아있는 이들 부부가 직접 참전했던 한국전쟁을 들어봤다.

김종열 선생은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한양대학교에 다니던 수재로 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인 서상면으로 돌아와 50년 10월부터 의용경찰로 고향을 지키기 시작했다.

“당시는 낮에는 대한민국이지만 밤에는 인민공화국이었어. 빨갱이들이 밤에만 내려와서 식량을 가져갔지. 학생이었지만 공비토벌대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어” 지리산과 덕유산을 비롯해 고산준령이 즐비한 함양군은 가장 활발한 빨치산 활동 지역이었다.

그는 주민들과 함께 무기를 들고 마을과 우리나라를 지키기 시작했다.

김씨 어르신은 “젊었을 때니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거지. 대학에 다니다 내려온 지식인에다가 무기까지 들고 대항하니 내가 빨갱이들에게 밉보여 우리 집에 불을 지르기까지 했어” 그렇게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등을 수행하며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전인 1953년 5월까지 빨치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한양대 전자학과를 졸업하고 진주교육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교수로 재직했다.

아내 맹숙희 여사는 치열한 최전선에서의 전투는 아니었지만 더욱 참혹한 야전병원에서 또 다른 전투를 치렀다.

충북 청주가 고향인 그녀는 충주간호학교를 졸업하자 곧바로 6·25 전쟁이 발발했다. 피난길에 오른 그녀는 밀양을 지나칠 때 육군병원의 참상을 목격했다.

“여기저기 아프다고 고함을 지르는 다친 병사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그녀는 ‘대한민국 아들들이 이렇게 죽어 가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는 생각에 그 길로 제7육군병원을 찾아가 종군을 신청했다. 21살의 어린 나이였던 그녀는 그해 12월에 간호장교로 현지 임관됐다.

전쟁 초기 무기는 물론 다친 병사를 치료할 약품 등 모든 것이 부족했던 당시 당장 수술이 필요한 병사들이 수백 명이었지만 군의관 1명이 전부였다. 수술도구조차 변변하지 않았으며 소독약이 없어 가마솥에 물을 끓여 수술 도구들을 소독하고, 붕대조차 없어 빨아서 사용해야만 했다.

낙동강 방어전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200여 명의 부상 병사가 후송되어 연병장에 천막을 치고 병사들을 눕혔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어요. 병사들이 흘린 피와 빗물이 함께 흘러 시뻘건 황토물이 되어 넘쳐흐르는데 천막 귀퉁이만 붙잡고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어요. 할 수 있는 것이 없잖아요”

부상병들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쉴 수 있는 시간은 유일하게 화장실에서의 잠깐의 휴식이 전부였다. “피곤하고 힘들어도 부상당한 군인들을 조금이라도 많이 돌보면 한 명의 귀중한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잖아요. 너무 힘들어 ‘하느님께 제발 도와 달라’라고 호소하기도 했어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을 치료한다’라는 사명감 하나로 힘겨운 하루를 버티며 환자들을 보살피는 나날이었다. “전쟁은 저에게 무서움과 참혹함만을 가르쳐 준 것 같아요. 전쟁의 참혹함을 생각하면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녀는 육군 중위로 군 생활을 마쳤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부는 55년 결혼해 슬하에 김경수 전 대구고검장을 비롯해 1남 4녀를 두었으며, 60년이 넘는 세월을 서로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이어오고 있다.

고향은 돌아온 김종열·맹숙희 부부는 장수마을의 대표로 알려진 서상면 대로마을에서 백년회로를 위해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주민들과 함께하며 젊게 살아가고 있다.

이들 노부부는 지난 2013년 참전 유공이 인정되어 ‘호국영웅 기장’을 받았으며, 6·25 전쟁 69주년인 지난 6월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이낙연 국무총리 초청 오찬에 초대되기도 했다.

안병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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