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일본인(1)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일본인(1)
  • 경남일보
  • 승인 2019.08.1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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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서울대학교재외동포교육 자문위원장)
경일시론-이광형
경일시론-이광형

지난 8월초, 김해대청고등학교의 문양수교장을 오랜만에 만났다. 십수년 전 일본 가나가와(요코하마)한국종합교육원장으로 근무할 당시를 화제로 여러 얘기를 나누던 중에,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 교류를 위하여 누구보다 온힘을 다하고 있는 치바현 일한관계사연구회 회장 요시이아키라(吉井哲) 선생의 실천 행동을 듣고서 나 스스로 미안해지고 부끄러워져, 최근의 상황처럼 한·일관계가 어려울 때 서로 정보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원고를 부탁했다.

흔히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를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들 일컫는다.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광복) 이래 최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최근의 한국과 일본 관계는 그 말을 실감나게라도 하려는 듯이, 그야말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면서도 가장 멀리 떨어진 나라처럼 사이가 소원해져 있다.

2000년대 초,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시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있었던 일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필자는 본국 훈령에 따라 일본에 파견되어 있던 모든 교육공무원들과 함께 일본 우익계 인사들이 왜곡 기술하여 집필한 역사교과서의 초안을 구하느라 분주하게 뛰어 다녔었다. 바로 그 시기에 왜곡 역사교과서 가운데 왜곡 기술의 정도가 아주 심했던 후쇼우사(扶桑社)라는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역사교과서의 초안을 어느 일본인으로부터 건네받은 적이 있다.

이번 칼럼부터 앞으로 세 번에 걸쳐, 그 당시 왜곡 기술된 역사교과서 사건으로 인연 맺은, 일본 공립고등학교의 한 역사과 교사와 얽힌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일본사람들’ 에 관한 얘기로 화제를 펼쳐 나가고자 한다.

그는 일본 왕족(천황가) 자제들이 주로 진학한다는 가끄슈인(學習院)대학원 사학과에서 일본고대사를 전공하고, 일본 치바현의 공립 고등학교 역사교사로 발령 받았다. 대학에서 일본의 선사시대와 고대 역사를 공부하던 그는 일본 고대문화의 원류가 한반도라는 사실을 일찍이 깨닫게 되었고, 한국과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됨으로써, 이른바 지한(知韓)을 넘어서 친한파 일본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던 중, 일본 고대사를 기록한 역사책인 코지키(古事記)에 실린 고대 역사를 찾아 금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의 옛 터전이었던 김해, 함안, 고성 등을 두 번씩이나 다녀가기도 하였다. 그 후 그와 친분이 아주 두터웠던 역사왜곡교과서 사건 당시의 치바한국교육원장(지금은 고인이 됨)과 필자 등의 안내로 2009년 여름, 가야국의 마지막 보루라고도 할 대가야의 유적을 찾아 경북 고령의 고분군을 탐방하였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 역사교과서에서 가야의 역사를 접한 것 외에는 직접 고분군을 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멀리 산등성이처럼 펼쳐진 수백기의 고분들을 직접 보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으며, 한편으로는 일본인의 권유로 대가야의 고분군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 부끄럽기까지 했었다.

2014년 여름, 필자의 권유로 임진왜란의 격전지인 남해노량과 이도다완의 본고장이면서 토요토미 군대에 포로로 잡혀간 옛 도공들의 얼이 서린 하동군 진교의 새미골 도자기 가마터를 견학하였다.

남해군 노량에 있는 충무공의 사당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사당의 방바닥에 깔린 타다미를 가리키면서, 충무공 이순신의 사당에 일본제 타다미를 깔아 놓다니 어찌 된 일이냐며 지적하여, 다시금 필자를 민망하게 만든 기억도 생생하다.

그 이듬해 2015년 봄, 일한관계사연구회원들을 인솔하여 가야국과 더불어 일본 역사의 근원이 된 백제 유적을 탐방하였다. 백제 멸망 직전의 도읍(都邑) 예정지였던 전라북도 익산, 백제국 초기 도읍지였던 위례성의 유적지인 서울 송파구 등을 탐방하였는데, 그 때도 필자는 안내차 그들과 함께 하는 영광을 얻었고. 역시 생전 처음 가보는 곳이었기에, 일본인보다 우리 역사 유적지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했거니와 관심을 갖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자책감으로 민망한 기분이 되어 따라다녔다.

그동안의 여러 인연으로 그는 이제 필자와 아주 두터운 친분을 쌓게 되었는데, 그와 교류하면서, 에도시대(조선후기)의 조선통신사 이후 우리 한국과 한국문화를 지키고 아낀 일본인들이 더러 있었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아울러 ‘가깝고도 먼 나라’ 라고 일컬어지는 한국과 일본 사이를 진정으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어떤 일이 있을까를 궁리해 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로서,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들의 교류를 더욱 활발하게 함으로써 한일 두 나라 국민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를 한층 더 늘여 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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