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취월장 진주경제[13] 호암 이병철의 기업가정신(4)
일취월장 진주경제[13] 호암 이병철의 기업가정신(4)
  • 정희성
  • 승인 2019.08.1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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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 ‘삼성’의 시작
경남일보, 진주경제발전추진위원회, 경상대 기업가추진단 공동기획
 
 

“황무지에 공장이 들어서고 수많은 종업원이 활기차게 일에 몰두한다. 쏟아져 나오는 제품의 산더미에 화차와 트럭에 가득채워 실려 나간다. 기업가는 이러한 광경을 바라 볼 때야말로 바로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더 없이 소중한 순간인 것이다.”

호암은 기업가가 맛볼 수 있는 감동의 순간을 이렇게 고백했다.

“새로운 사업을 연구하고 개척하면서, 끊임없이 기업을 창설하고 운영해 왔을 따름이다. 해방 후 거의 무(無)의 상태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산업이다. 새로 착수해야 할 사업내용이나 그 경영관리 방식에 대해 전문적인 조언을 구하고 싶어도 그것은 불가능했다. 하나하나 자문자답하면서 혼자서 해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기업가의 이러한 끊임없는 도전과 의욕이 국가경제발전에 하나하나 초석이 되고 원동력이 된다고 강조했다.


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라

◇새로운 도전…삼성상회=호암은 첫 사업실패 후 대구에서 ‘삼성상회(三星商會)’라는 새로운 사업을 착수했다. 대구시 서문시장 근처 250평 남짓한 점포에 ‘삼성상회’의 간판을 걸었다. 이것이 오늘의 ‘삼성’의 모체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며 대륙을 여행할 때 놀란 것은 상거래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었다. 만주는 물론 베이징, 칭다오 등 엄청난 규모의 상점들, 상점뒤로는 수백대씩 드나드는 큰 창고가 즐비하고, 산더미처럼 상품을 쌓아놓고 있었다.

공업 원재료, 식품, 의료, 농수산물 등 그들의 상품은 그 종류도 많았지만 그중 한가지를 가지고 무역을 한다고 해도 엄청난 규모가 될 것이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일상 생활에 불가결한 청과물, 건어물 그리고 잡화 등은 반드시 소비가 늘어날 것이 뻔한데 아직 여기에는 전문화 된 업자조차 없었다.

‘삼성’의 ‘삼(三)’은 큰 것, 많은 것, 강한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다. ‘성(星)’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끗이 빛나는 것을 뜻한다.

재출발하는 사업에 이러한 소원(크고 강력하고 영원하라)을 담아 호암은 스스로 이 상호를 선택했다. 호암은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스스로 다짐했다. “나는 거듭 강조하고 싶다. 기업은 결코 영원한 존재가 아니다. 변화와 도전을 게을리하면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단 쇠퇴하기 시작하면 재건하는 것은 힘들다”

실제 호암의 일생은 한국경제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28세에 현 삼성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그 뒤 제당·면직·비료 등에서 TV·반도체 등 최첨단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오늘의 삼성을 만들었다.

한국경제가 단순 부품조립에서 중화학·전자·반도체 등 첨단산업으로 옮겨갈 수 있었던 것도 호암의 결단과 의지 때문이었다. 호암은 1960년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만나 전자산업이 미래라며 설득해 1968년 정부의 ‘전자공업진흥 8개년 기본계획’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한국경제의 거목 호암이 50여 년간 삼성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회사 설립과 인수를 통해 일군 기업만도 37개에 이른다.

호암의 기업관은 지금도 살아 있다. 호암은 “기업의 적자는 한 기업의 적자로 그치지 않는 일종의 사회악(惡)”이라고 했다. 또 “기업 하는 사람의 본분은 많은 사업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생계를 보장해주고 세금을 납부해 국가 운영을 뒷받침하는 데 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호암이 격동의 시대를 극복하고 도전하면서 삼성의 성장에서 그 때 그 때 마다 필요한 인재상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으로의 여로를 걷기 시작하는 데, 기업 또한 창업과 동시에 언젠가는 쇠망의 위기에 직면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 ‘어느 날’은 결코 먼 미래가 아니다. 한 나라의 산업구조는 경제 발전단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노동집약에서 자본집약, 경공업에서 중공업, 소재에서 가공조립으로, 산업과 기업은 그 구성을 바꾸어간다. 중후장대(重厚長大)의 중화학 구조에서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첨단기술산업으로 주역이 바뀌어 간다.

이러한 구조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낙후된다. 종래의 구조에 매달리는 기업은 단명하고 만다. 기술의 혁신과 그로 인한 산업구조의 변화에 기업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이 구조혁신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활력 있는 기업은 시대를 선행해 그 수명이 연장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시대의 진운에서 탈락되고 만다.

호암은 여기에는 최고경영자의 자질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떠한 사람이 사장이 되어야 하느냐. 호암이 말하는 몇가지 조건이다. 그 조건은 일곱가지로 △덕망을 갖춘 훌륭한 인격자 △탁월한 지도력 △신망 받는 인물 △풍부한 창조성 △분명한 판단력 △강력한 추진력 △책임질 줄 아는 사람 등이다.

호암은 자신이 일생동안 벌인 크고 작은 사업들은 하나같이 국민경제를 생각하면서 구상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국가발전에 필수 불가결하고 선구적인 역할을 한 사업으로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자서전에 제시했다.

“첫째는 1953년 동란속에서도 제일제당의 설립을 결심했던 일이다. 그때까지 무역업을 해온 상업자본이 비로소 생산공장을 움직이는 산업자본으로 전환되는, 이를테면 나의 첫 번째 변신이었다. 제일제당은 경제사적으로 보면 우리 민족자본에 의해 최초로 탄생된 근대산업시설이었으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갖춘 유일한 공장이었다.

내 인생 두 번째 전기는 1964년 8월에 창립한 한국비료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개발에 착수한 지 불과 2년 만에 4390만 달러라는 거대외자를 민간차관으로는 국내에서 최초로 도입해, 세계 최초의 단일비료공장을 10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갖은 고생과 고초, 고역을 치른 끝에 건설했다.

세 번째 전기는 21세기를 지향하는 최첨단 산업분야인 반도체의 세계에 뛰어든 일이다. 네 번째로, 나의 사업은 다만 물질적인 생산기업에 한정되지 않고 정신적인 문화사업에도 열의를 가져왔다”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 사진출처=헤럴드 경제


치밀한 판단력과 혜안을 가졌던 호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말하는 ‘호암의 경영철학’

“호암 이병철 회장이 걸출한 사업가였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이들이 알 것이다. 그는 자신의 치밀한 판단력과 혜안(慧眼)으로 삼성이라는 대그룹을 일구었으며, 오늘날 삼성이 한국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놓았다. 호암은 ‘사업이란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인재에 대한 호암의 열성은 우리나라 기업사에 하나의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사업이란 자본의 크기로만 승패가 결정되는 일이 아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사업은 사람의 일이며, 자신과 주변 모두의 철저한 노력 속에서 그 성패가 좌우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사업에 성공하기까지 온갖 정성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사업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노력은 정당하게 인정되어 한다.

호암의 사업관은 ‘인재 제일주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만 열정을 품었던 것은 아니다. 호암은 자기 스스로를 단련시켜왔다. 단정한 그의 옷매무새는 자신에 대한 엄격함을 밖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또 일단 시작된 사업에 대해서 제일주의를 견지하던 모습은 무한경쟁시대를 맞이한 오늘날에 다시 한 번 변화, 발전시켜야 할 만한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보다는 호암의 승부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업가란 미래의 불확실에 대한 확신을 갖고 투자를 할 수 있는 승부사 기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성공이 보장되는 일이란 없다. 자신의 역량을 가늠해 보고, 시작한 일에 대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 사업뿐만이 아닌 인생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더욱이 많은 이들이 모여 있고, 생계가 달려 있는 기업조직에서 그 수장(首長)은 누구보다 먼저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불확실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전력 투구해야 할 것이다.

호암의 승부에 임하는 자세를 드러내는 단적인 예는 골프를 칠 때이다. 흔히 골프를 치면 그 사람의 성격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얘기를 한다. 나는 호암과 골프를 치면서 그가 승부에 임하는 자세를 보곤 했다.

호암은 사업상의 경쟁뿐만이 아니라 운동경기에서도 지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재계(財界)의 친선 골프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친선 경기일지라도 골프에서 지는 것을 아주 싫어했고, 어쩌다 한 번 지기라도 하면 다음 시합에서의 승리를 통해 지난번의 패배를 털어 내고는 했다.

비슷한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운동을 하다 보면 승리를 할 때도 있고, 패배를 할 때도 있다.

그러면 호암이 그 흔한 승패의 교차에 대해 그렇게 희비(喜悲)했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단순한 승부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바의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던 것에 대해 스스로 용인(容認)을 못하는 것이다. 호암은 골프에 지고 나면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 되짚어 봤을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점을 찾아 고치고 이것을 바탕으로 다음 시합에 임했을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반드시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여기에서 과감히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도 있고, 정교하게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재추진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갖고 스스로를 곧추 세우지 못한다면 중간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삼성이 굳건히 그 위치를 지키고 있는 데에는 바로 호암이 승부에 임할 때 갖고 있던 이러한 자세가 영향을 미쳤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반도체사업에 삼성이 진출했을 때 누구도 이 사업이 오늘날과 같은 성공을 거두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로 단기간에 반도체가 성공하기까지는 중간의 고비에서 자신의 장·단점을 살펴 단점을 극복해 성공을 현실화 시켜 왔던 역사가 있었다.

성공을 위한 치열한 승부근성을 갖고 자신의 단점을 되짚어 스스로 고쳐 가며 성공의 길을 현실화시켜 나가는 것. 삼성이 걸어 왔던 말만큼 쉽지 않았던 그 길의 한 가운데에는 바로 호암이 있었다”

정리=정희성기자

‘일-취-월-장 진주경제’ 프로젝트는 경남일보, 진주경제발전추진위원회(위원장 정인철), 경상대학교 기업가정신추진단(단장 정대율 교수)이 공동으로 진주지역 출신 기업가들의 혁신적인 기업가정신 뿌리를 탐색하고 정립해서 위기의 한국경제-진주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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