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바다에 감성을 묻다(11) 노량해협 따라 이순신 장군 만나는 길
쪽빛바다에 감성을 묻다(11) 노량해협 따라 이순신 장군 만나는 길
  • 박도준·김지원기자
  • 승인 2019.08.2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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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했던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의 우국충정

하동·남해 이순신호국로
코스:하동 금남면사무소~노량대교~남해대교~관음포(5.5㎞)
오션뷰 전망대:첨망대
명소:노량대교홍보관, 남해대교, 이락사, 첨망대, 이순신순국공원
문의:이락사 관광안내소 055-863-4025
노량대교 앞 남해대교 뒤
노량대교 앞 남해대교 뒤

노량해협을 사이좋게 끼고 있는 하동과 남해에 똑 같은 노량리가 마주보고 있다. 노량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노량해전이요, 이순신 장군이다. 13척의 전선으로 왜적의 450여척을 격파했음에도 우리는 대첩이라 부르며 즐거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곳 노량해전에서 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이 적의 유탄에 유명했기 때문이다. 이순신호국로는 하동 금남면사무소에서 남해대교를 거쳐 남해 관음포까지 이어지는 짧지만 강렬한 길이다. 임진왜란 최후 전투인 노량해전 현장. 400여년 전에도 억지주장으로 왜란을 일으키더니 지금도 명분없는 ‘경제왜란’ 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을 생각하며 이 길을 찾았다. 짧지만 강렬한 길.



 
이순신 호국공원
이순신 호국공원

깔끔하게 새로 난 길을 달려 이순신호국로 출발점인 하동군 금남면사무소 앞에 도착했다. 노량대교 홍보관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남해쪽 노량대교 대교치안센터에서 내렸다. 노량대교 동쪽으로는 광양만이 보이고, 서쪽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로 아름다움과 위용을 자랑하던 다홍색의 남해대교가 보인다. 한국판 금문교로도 불려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던 보물섬 남해군의 관광명소로 이름을 날리게 한 일등공신이 이 대교이다. 대교 아래의 바다물은 왜적을 물리친 장군과 조선수군을 닮은 듯한 짙푸른 바다가 아찔하게 다가왔다.

남해대교를 건너면 오래된 왕벗나무들이 반기는데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며, 남해안의 낙조가 아름다운 곳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선정한 곳이다.

노량대교와 남해대교 아래에는 횟집촌 앞 바다에 거북선 한 척이 떠 있다. 수군깃발에 날리는 부교를 통해 실물크기의 거북선으로 들어서면 배를 지휘하는 장수의 밀랍인형이 앉아있고, 수군 인형들은 경비를 서고 있다. 16개의 노에 최대 6노트를 낼 수 있는 돌격용 전선인 거북선에는 14개의 포문이 설치되어 있다. 스피커를 통해 그날의 혈투를 재현하는 듯 ‘포를 발사하라’라는 장수의 우렁찬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장군복 입기 체험에 여념이 없는 학생들을 뒤로 하고 나왔다.

 

충렬사 앞 거북선

맞은편 언덕 위의 충렬사를 찾았다. ‘노량바다는 이 충무공이 전사하신 데라, 여기에 충렬사를 세우니라’라는 비석이 충렬사임을 알리고 있다. 태극기가 그려진 충렬사 정문를 들어서서 돌계단을 올라 작은 사당 앞에서 묵념을 하고 돌아나왔다. 사당은 아담했다.

노량공원을 거쳐 옛날 도로를 따라 이순신순국공원과 관음포이충무공전몰유허지를 찾았다. 유허지는 이락사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맨 처음 육지에 오른 곳이다.

입구엔 ‘戰方急 愼勿言我死’(전방급 신물언아사:싸움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라는 글귀가 새겨진 돌비석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장군의 기상을 닮았다. 계단을 올라 걸어가자 이락사(李落祠) 현판이 걸린 사당이 나왔다. 장성처럼 버티고 선 소나무 아래 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 라는 뜻을 지닌 ‘대성운해(大星隕海)’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다. 붉은 글씨로 유허비가 새겨져 있다. 1832년 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장군을 기리며 세웠단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양 옆으로 장성들이 도열한 듯 소나무들이 들어선 부드러운 오솔길이 나온다. 35도를 웃도는 찜통더위도 이곳에선 맥을 못칠 정도로 시원했다. 소나무 사이로 동백나무들이 보이는 이 길을 따라 솔향기 맡으며 심신을 정화하고 500m쯤 가면 첨망대가 보인다. 첨망대, 이순신 장군이 순국하신 옛자리를 보면서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91년에 건립한 누각이다. 이곳에 올라서면 관음포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보인다.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왜선을 격파하고 도망치는 왜적을 관음포까지 쫓아와 싸우다가 이곳에서 왜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장군의 최후의 한 마디 ‘戰方急 愼勿言我死’. 전투가 끝난 뒤 장군의 시신을 뭍으로 옮긴 곳이 바로 이락사 옆 관음포 해변이라 한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이곳의 작은 포구를 이락포, 산을 이락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눈감고 그 때를 상상해 본다. 바닷바람이 귓가를 스쳐 운다.

4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때의 우국충정과 함성 소리는 사라지고, 관음포 바다 너머로 광양제철소의 우후죽순 같은 굴뚝들이 이락사 입구의 돌비석처럼 솟구쳐 있다.


되돌아 오는 길, 生卽必死 死卽必生(생즉필사 사즉필생:살려고 하면 반드시 죽고, 죽을려고 하면 반드시 산다)는 장군과 장병들의 결연한 자세를 생각한다. 경제왜란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락사을 포함한 이곳은 이순신순국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순신영상관, 호국광장, 관음포광장, 이순신영상관, 리더십체험관 등등. 이순신밥상 체험관은 중국집으로 변해 있는 현실을 볼 때 가슴이 아프다. 8월의 햇볕이 너무 뜨거워 이곳은 뒤를 기약했다.

우천으로 보지 못한 다랭이마을을 찾아 길에 바다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는 갈화마을의 왕새우 양식장의 산소발생기가 이채롭게 보였다. 노구 송정교 옆 멋드려진 소나무는 수령 200~300년, 높이 10m, 둘레 3m에 달했다.

유포마을 물레방아간을 뒤로 하고 남상을 지나 달리다 광나무가 늘어서 있는 도로가 아름다워 작장리 한 쉼터에 차를 세우고 뒤돌아보니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서상항에 다다를 무렵까지 이어지는 벚나무 터널도 좋았다.

이에 앞서 진주에서 하동·남해 이순신호국로를 찾아가는 길, 경충사에 들렸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운 정기룡 장군의 유품들이 전시된 곳이다. 정기룡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별장의 벼슬로 거창싸움에서 왜적 500여 명을 격파하고, 곤양의 성을 지키는 장이 되어서는 왜적이 호남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 60여 회의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어 조선왕조실록에는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이라고 기록할 정도란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산책하기 좋다. 바로 옆에 금오산 집와이어 매표소가 있다. 해발 849m의 하동 금오산 정상에서 최고 시속 120㎞/h 의 속도로 3.186㎞ 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집와이어의 활강은 짜릿함과 한려해상의 다도해 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내친 김에 박경리 선생의 토지의 주무대인 최참판댁과 영호남 화합의 상징인 화개장터에 들러 즐기는 것은 덤이다.

글·사진=박도준·김지원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참판댁
최참판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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