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말 엿보기[10] 흐리터분하다, 알림, 길잡이, 한뉘
토박이말 엿보기[10] 흐리터분하다, 알림, 길잡이, 한뉘
  • 경남일보
  • 승인 2019.08.2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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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은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날로, 어둠과 같은 날들 속에 살다 빛을 되찾았으니 빛찾날, 광복절이라고도 합니다. 올해로 74돌을 맞았는데 날이 날인만큼 여러 가지 일을 마련해서 뜻깊게 보냈다는 기별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에게는 그저 쉬는 여러 빨간 날 가운데 하루가 된 것도 참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나라를 되찾았을 때 그 어떤 일보다 먼저 챙겨서 했던 ‘우리말 도로 찾기’와 아랑곳한 토박이말을 몇 가지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다들 알고 계신 바와 같이 나라를 되찾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서른여섯 해 동안 일본에 억눌려 사느라 거의 다 잊어버리다시피 한 우리말을 되찾자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그 어떤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저는 믿습니다.단기 4281년 서기 1948년에 나온 ‘우리말 도로 찾기’라는 책이 있는데 어떤 생각으로 그런 일을 펼쳤는지가 잘 드러나는 머리말을 조금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난 36년 동안 포악한 왜정 밑에서 얄궂은 민족 동화 정책에 엎눌리어 우리가 지녔던 오천 년 쌓아 온 문화의 빛난 자취는 점점 벗어지고 까다롭고 지저분한 왜국 풍속에 물들인 바 많아 거의 본래 모습을 잃게 되었으니 더욱 말과 글에 있어 심하였다. 우리의 뜻을 나타냄에 들어맞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구태여 일본말을 쓰는 일이 많았고 또 우리에게 없는 말을 일어로 씀에도 한자로 쓴 말은 참다운 한자어가 아니오, 왜식의 한자어로서 그 말의 가진 바 뜻이 한자의 본뜻과는 아주 달라진 것이 많다. 이제 우리는 왜정에 더럽힌 자취를 말끔히 씻어버리고 우리 겨레의 특색을 다시 살리어 천만년에 빛나는 새 나라를 세우려 하는 이때에 우선 우리의 정신을 나타내는 우리말에서부터 씻어 내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다”

올해를 비롯할 무렵부터 3·1운동 100돌, 임시정부 세움 100돌을 기리며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일제 잔채 청산’이란 말을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게다가 얼마 앞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와 아랑곳한 반일, 극일 움직임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정신을 나타내는 우리말에서부터 더럽힌 자취를 말끔히 씻어버리자는 말을 보고 가슴이 뛰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흔 해 앞에 이 책에서 쓰지 말고 버리자고 했던 말을 오늘도 우리가 쓰며 살고 있는 걸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요즘도 우리가 잘 쓰는 ‘애매하다’를 우리말 도로 찾기 1쪽에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애매(曖昧): 우리말 ‘애매’와 뜻이 다르다. ‘애매(曖昧)’는 ‘모호하다’는 말이요. 우리말 ‘애매’는 죄가 없다는 말이 되므로 이 말을 우리말의 ‘애매’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저는 ‘애매하다’ ‘모호하다’ 말고 ‘흐리터분하다’는 말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2쪽에는 우리가 잘 쓰는 안내(案內)(하다)를 1)인도(하다), (모시다), 2)알림, (알리다)로 쓰자고 하고 ‘안내자(案內者)’는 ‘길잡이’, ‘인도자’로 쓰자고 했으며 ‘안내장(案內狀)’은 ‘청첩’, ‘알림’, ‘통지서’로 쓰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생(一生)’은 ‘평생’, ‘한평생’, ‘한뉘’로 쓰자고 했네요. 굳이 이런 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앞으로 어떤 말과 글을 더 많이 쓰며 사는 것이 우리다운 말글살이인지 되새겨보는 자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창수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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