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서북능선 종주
지리산 서북능선 종주
  • 경남일보
  • 승인 2019.08.2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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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전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 소장·자연환경해설사)
신용석
신용석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 약 33㎞의 지리산 종주를 싱겁게 생각하는 산꾼들이 생각해낸 것이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약 44㎞의 화대종주이다. 이 보다 더 진정한 종주는 지리산의 서북쪽 끝에서 바래봉-세걸산-정령치-만복대-성삼재에 이르는 약 22㎞의 서북능선을 걷고 나서 천왕봉을 향한 종주를 잇는 것이다. 태극종주는 이 종주의 끝 부분에 지리산의 동쪽 끝 웅석봉을 붙이는 것인데, 이 코스 중 중봉-하봉-왕등재 능선은 출입금지구역이므로 억지로 이 길을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치밭목을 거쳐 대원사로 하산하더라도 태극모양 길이다.

남원의 구인월 마을을 시점으로 첫 번째 봉우리 덕두산(德頭山)까지는 지루한 오르막인데, 덕산(지리산)의 첫 번째 산이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기대했던 덕두산은 봉우리라고 할 것도 없이 협소하다. 투덜거리며 더 올라서면 드디어 하늘이 열려 지리산의 큰 능선들 전망이 기가 막힌 바래봉(1186m)이다. 여기서 성삼재까지 서북능선길이 첩첩하고, 시선의 끝에서 S커브를 틀어 반야봉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주능선의 실루엣이 쫙 펼쳐진다. 철쭉군락으로 유명한 바래봉에서 부운치(浮雲峙)까지의 능선 길은 말 그대로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하다. 때로는 구름에 달 가듯이, 때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세걸산(1220m)에 오르니 앞으로 갈 길이 점점 물러나고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능선이 길고 체력부담이 된다. 서북능선에서 정령치휴게소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오아시스 같은 곳으로 천왕봉 방향의 일출과 남원 방향의 일몰풍경이 일품이다. 과거에 백두대간 마루금을 잘랐던 정령치 도로의 정점을 터널화하고 흙을 덮어 맥을 이었으나 그 상부를 사람과 야생동물통로로 같이 쓰고 있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고 비과학적이다. 정령치와 성삼재 도로 전체에 그물망과 같은 동물통로가 설치되어야 한다.

이어서 만복대(萬福臺·1438m)에 오르니 먹거리와 약초가 많아 복이 많다는 이름뜻처럼 산세가 순하고 보는 이의 마음도 평화롭다. 만복대를 내려서니 숲 가장자리에 도열한 철쭉, 싸리나무, 미역줄나무, 산죽 등이 자꾸 배낭을 붙잡거나 팔뚝에 상처를 낸다. 숲 안쪽으로는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일 것이다. 이어서 순탄한 길을 두 시간쯤 걸어 성삼재에 도착한다. 지리산 서북능선! 이 길은 한쪽으로 지리산의 웅혼한 주능선을 우러르며 걷는 구도의 길이고, 한쪽으로 백두대간과 황산(운봉)벌판을 내려 보며 걷는 역사의 길이다. 산행객이 많지 않아 온전히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치유의 길이다. 주능선과는 확실히 다른 또 하나의 지리산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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