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부엉이, 4대강에 깃드나
미네르바 부엉이, 4대강에 깃드나
  • 경남일보
  • 승인 2019.09.0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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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전 경남일보 국장)
정재모

4백 페이지 넘게 두꺼운 책 ‘반일 종족주의’(미래사)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석양에 운다.’는 인용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망국에 관한 예언은 그것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야 들린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부연했다. 사학자 등 6인의 공동 저작이다.

올여름 우리 사회에 몰아친 반일 열풍 속에서 상당히 주목 받은 책이다. 지금껏 알고 있던 일제의 강제 동원 같은 여러 가지 통념이 잘못이거나 과장·왜곡된 부분이 있다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그러나 내겐 그런 주장보다는 마지막 페이지의 위 문장이 뇌리 깊이 남아 있다.

미네르바는 로마신화 속 지혜의 여신이다. 이 여신의 어깨에는 항상 심부름을 하는 부엉이가 앉아 있다. 이것이 곧 ‘미네르바의 부엉이’다. 해가 지고 어두워야 비로소 날갯짓을 한다는 새다. 신화에서 부엉이는 원래 여인이었지만 제 아비와 통정한 죄로 부엉이가 되었다. 그 수치심으로 남의 눈을 피해 밤에만 활동한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어쨌거나 이 부엉이는 지혜의 여신을 따르는 신조(神鳥)이므로 서양 문화권에서 지혜의 상징으로 되어 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란 어구를 처음 만든 사람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라고 한다. 저서 ‘법철학’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이후에야 날개를 편다’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는 거다. 그가 무슨 뜻으로 이 말을 썼는가. 역사 연구에서 시간적 거리를 두는 게 지혜라는 은유다. 낮에 일어난 일은 시간이 지나 밤이 돼야 옳게 살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사건을 발생 즉시 관찰해서는 올바른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어떤 일을 두고 흔히 ‘훗날 역사가 말해 줄 것’이라며 당대의 단정적 평가를 경계하는 태도도 이런 맥락일 게다.

정부의 4대강 보 처리가 좀 신중해질 듯하다. 일전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보의 처리는 선 계획, 후 조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는 거다. 계획을 세우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도 했다. 철거를 밀어붙이던 환경부의 입장 변화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보 건설로 4대강 자연이 황폐화한 것으로 보고 이를 자연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한 대통령 공약에 따라 정부는 보 16개 중 13개를 개방했다. 3개는 철거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환경장관의 발언은 이런 기승스러운 추진을 좀 완화하려는 뜻으로 들린다.

이명박 정권 때 구축한 큰 보 16개를 사그리 부정하는 태도를 취해 온 정부다. 그 정부에 어둑발이 내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깃드는가 싶어 눈길이 간다. 논란 많은 다른 정책 부문에도 그럴 건가, 그것도 주목된다.


정재모(전 경남일보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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