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말 엿보기[12] 살사리꽃, 가을부채, 맏물
토박이말 엿보기[12] 살사리꽃, 가을부채, 맏물
  • 경남일보
  • 승인 2019.09.0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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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장마라고 하면서 여러 날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어제 새벽에는 천둥 번개와 함께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제가 지난 7월에 ‘장마’ 이야기를 하면서 ‘가을장마’를 가리키는 토박이말로 ‘건들장마’라는 말을 알려드렸었는데 생각이 나시는지 궁금합니다. 더위가 물러가고 건들건들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건들바람’이라고 하고 이때에 찾아오는 장마라서 ‘건들장마’라고 하지 싶습니다. 딱 요즘과 같은 날씨에 쓰기에 알맞은 말이지요. 날씨를 알려주는 분들이 이 말을 써 주신다면 더 많은 분들이 함께 쓰게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저희 모임에서 지난 8월은 가을로 들어가는 달이라서 ‘들가을달’이라고 하고 9월은 그야말로 온이 가을로 차는 달이라고 ‘온가을달’이라고 합니다. 이 온가을달에 알고 쓰면 좋을 토박이말을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가을 하면 어떤 꽃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는지요?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거의 ‘코스모스’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코스모스’를 가리키는 토박이말이 있는데 아시는 분이 많지 않더라구요. ‘코스모스’를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는 ‘살사리꽃’이라고 불렀답니다. 가을바람에 살살 흔들리며 하늘거리는 모양이 수줍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슬픈 듯, 가냘프게 보이기도 합니다. 본디 멕시코 높은 뫼땅(산지)에서 건너왔다고 하는데 가을이 되면 여러 빛깔로 뽐을 내며 서 있는 이 꽃을 우리나라 곳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살사리꽃’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렇게 예쁜 이름이 대중말(표준말)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말모이(사전)에도 ‘살사리꽃’을 찾으면 ‘코스모스의 잘못’ 또는 ‘코스모스의 비표준어’라고 풀이를 해 놓았습니다. 이렇게 풀이를 해 놓았으니 사람들이 ‘살사리꽃’이라는 말을 쓰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살사리꽃’이라는 예쁜 말을 많이 쓰면 대중말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무렵 알고 쓰면 좋은 토박이말에 ‘가을부채’가 있습니다. 지난 달 불볕더위가 이어질 때는 이 더위가 언제 끝나나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건들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고 나면 더울 때 더위를 식히려고 즐겨 찾던 부채도 쓸모가 없어져 버립니다. 더울 때는 잘 썼지만 더위가 가고 가을이 되면 아무도 찾지 않는 부채가 바로 ‘가을 부채’지요. 그래서 한 때 쓸모 있던 것이 철이 지나 쓸모없게 된 몬(물건)을 빗대어 ‘가을부채’라고 합니다.

요즘 여러 가지 과일들이 많이 나오더라구요. 사과, 배는 나온 지가 좀 되었고 밤도 햇밤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처럼 과일이나 푸성귀 따위에서 그해의 맨 처음에 나는 것을 ‘맏물’이라고 합니다. ‘맨 처음’을 뜻하는 토박이말로 ‘꽃등’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면 ‘맏물’ 풀이도 ‘과일이나 푸성귀에서 그해 꽃등으로 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을로 가득 한 온가을달, 9월을 보내시면서 오늘 알게 된 토박이말들을 둘레 분들께도 알려 주시고 자주 써 주시는 분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창수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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