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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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9.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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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김춘복 성장소설 ‘토찌비 사냥’(1)

성장소설은 논픽션의 큰 줄기에
픽션의 긴장을 보태야 맛이 산다
농장 창고에 올린 서재 편액에
어머니가 뱉은 한탄이 맛이 난다
소설가 김춘복의 장편 성장소설 ‘토찌비 사냥’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김춘복 작가는 1938년 밀양 산내면 남명리 동명동 숲마에서 8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부산중학에 입학하여 2학년때 국어교사 오영수 선생을 만나 장차 소설가가 될 것을 약속했다.

부산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동인지 ‘일곱 별’을 등사지로 발간하는 등 문학에만 열중했다. 진로를 서라벌예대로 정하고 체력단련을 위해 럭비부에 들어갔다. 1959년 서라별예대 재학중 김동리선생의 추천으로 단편 ‘낙인’이 ‘현대문학’지에 실렸으나 입대, 제대 결혼생활로 창작 템포가 이완되었다.

1976년 장편 ‘쌈짓골’이 창작과 비평에 분재됨으로써 17년만에 등단하는 끈기를 보여주었다.

필자가 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1977년경 진주로 이주해온 소설가 이재기로부터였다. 이재기와는 김 작가가 밀양세종고등학교에서 함께 교사로 근무했었다는 것이었고 ‘쌈짓골’로 뜨는 소설가라는 것이었다. 이재기 작가는 천주고 전교회장 출신으로 진주에 와서는 봉곡동 교회에서 필자와 만나 신앙과 문학에 관한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면서 살아온지 40여년이다.

이재기 소설가는 김춘복과는 소설에 있어 사뭇 다르다. 김춘복 작가는 민족의 현실 문제를 다루는 리얼리스트이고 이재기 작가는 한결같이 천주교 신앙을 패러디하는 크리스찬으로서의 길닦기에 가치를 건 사람이다.

필자가 실제로 김춘복 작가를 만나게 된 것은 진주신문 가을문예 심사때였다. 가을문예 초기 에 필자는 시부문의 심사를 하고 김작가는 소설심사를 하고 났을 때였다. 그는 술판에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술이 좀 거나했을 때 자리에 그냥 앉아 있지 못하고 개구리춤인지 두꺼비춤인지를 추며 방을 빙빙 돌았다. 말하자면 그는 놀이에 신명이 좋았고 나는 술 한 잔을 놓고 끙끙대는 편이었다.

제번하고 필자가 김춘복 작가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대한 것은 ‘알퐁소와 긴조9호’였다. 유신시절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사건을 소설화한 것인데 필자는 소설 밖에 있는 현실로서의 그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픽션으로 바꾸는 작가의 필치에 신뢰를 보내는 마음이 되었다. 이 감상문을 가톨릭마산교구문인회 회장으로 있을 때 영성지 권두비평으로 실었다. 김작가의 현장 짚어내는 힘이나 거기 맞는 말들을 가려 쓰는 점에서 매우 능란한 솜씨를 보였다. 아, 필자는 그가 태어난 얼음골에 한 번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에서 글 쓰는 일을 그만 두고 고향에 들어가 사과밭이나 가꾸며 틈틈 작품을 쓰리라 계획했던 것이었고, 식구들은 서울에 남겨두고 얼을골에서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봉양하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건강이 좋지 않은 이재기 작가가 벌떡 일어나면 함께 진영을 지나 수산을 지나 얼음골로 들어갔다 나오고 싶다. 가다가 영남루도 보고 표충사도 보고 은어회도 한 접시 하고 싶다.

이번에 나온 성장소설 ‘토찌비 사냥’은 작가가 태어나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장해온 과정을 픽션으로 각색해낸 작품이다. 소설은 소설이지 성장이라는 토를 붙일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소설은 우선 정해진 인물들이 있고 그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소설이 된다. 그 많은 시간이 주어지고, 인물의 제한이 풀리고 활동 공간도 넓고 시대가 다르게 변화가 되는 그 광역적 자료를 어떻게 플롯 안으로 끌고와 소정의 소설 미학이라는 구조를 세울 수 있을까,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작가는 원로가 되어야 하고 퍽 퍼져나는 배경을 그 가운데서도 소정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성장소설은 그러므로 논픽션으로 가는 이야기를 픽션적 긴장을 보태어 픽션 이상의 재미를 붙여주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작가는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시대를 읽어내는 해석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소설 안표지에 적혀 있는 몇문장의 이야기가 해학적이고 의미가 깊다. “한 몸에 두 지게를 질 수는 없었다. 결국 사과농사를 포기하고 창고를 서재로 개조하여 ‘심우당’이라 편액하자 어머니가 말했다. ‘하이고 씨부랄거, 수풀만 우거지면 뭐하노, 토찌비가 나와야 말이지‘ 과연 어머니다운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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