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 칼이 되지 않으려면...
  • 경남일보
  • 승인 2019.09.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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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진주여성회 대표)
여성-박혜정
여성-박혜정

2일 인사청문회에서 모국회의원이 미혼인 후보자에게 출산율을 거론하며 “본인의 출세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 달라”고 하여 논란이 일자 사과를 한 해프닝이 있었다. 후보자의 자질이나 능력 혹은 도덕성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에서 뜬금없는 그 지적은 함께 방송을 지켜보던 국민들까지 어이없게 만들었다. 후보자가 남자였어도 그런 질문을 했겠느냐는 다른 국회의원의 항의가 없었다면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른채 어물쩍 넘어 갔을 것을 생각하니 그 국회의원의 성평등 지수가 의심스럽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흠집을 내는 것이 급급해 청문회장에서만 그런 말을 했을까? 출산률이 낮은 이유가 여성이 아이를 안낳아서라니 여성이 출산을 위한 도구로밖에 보이지 않는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 아닐 수 없다. 아무렇지 않게, 아무자리에서나 여성에게 책임을 돌리는 말들이 여성혐오, 여성비하이며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다. 그런 말들은 갑들이 저지르는 을들에 대한 일상 폭력중에 하나다.

다가오는 13일은 조상님께 만물의 결실을 감사드리고 가족 친지가 모이는 우리 고유 명절 추석이다. 오랜만에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과 친지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 주변에서도 벌써 명절증후군을 앓기 시작했다. 명절을 맞이하는 것이 두려운 것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은 배려 없는 말들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는 관심의 표현이고 인사 의미로 하는 말들이라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는 명절이 되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 실제로 지난해 9월경 사람인(취업포털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추석에 가장 듣기 싫은 말로 1위는 “취업은 했니? 월급은 얼마 받아?”였다. 어려운 취업난을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심적부담이 크다보니 반갑지 않은 소리다. 2위가 “결혼은 언제 할 거야?, 애는 언제 가질 거야?”였다. 결혼해서 아이낳고 살아가기에는 경제적으로도 심적인 여유도 없고 사회적 뒷받침도 힘든데 과제처럼 물으니 듣고 싶지 않는 말이다. 게다가 모국회의원처럼 결혼 안하는 이유와 아이를 안 낳는 이유가 여성에게만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면 스트레스는 더 배가 된다. 많은 이들이 표준처럼 알고 있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정상적인 행복한 사회 구성원이라는 답지는 이제는 다르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가부장제에 문화에 익숙한 배려없는 문화, 여성들만 하는 일방적인 가사노동, 지나친 위계나 서열을 따지는 제사문화등을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명절이후 이혼률이 증가했다는 기사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장기간 운전, 경제적 지출 등 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말로 주는 상처로 인해 가장 큰 명절 증후군을 만들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말이 차별이 되거나 편견을 드러내는 말이 되거나 심지어는 상처를 주는 말이 될 수 있다. 사소해 보이는 말한마디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혐오의 표현이 된 것이다. 다가오는 추석에는 다시 만나고 싶은 가족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말로 상처주지 않는 혐오없는 명절이 되도록 해보자.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 출판, 2018)’의 저자 홍성수 교수는 혐오표현이 단순히 싫다는 감정이나 일시적이고 사적인 느낌, 우발적인 사건이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혐오표현은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이 감정 차원을 넘어 현실 세계로 드러난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집에 가서 애나 봐라는 말이 지금은 차별의 표현이지만 애를 보는 것이 세상 최고의 가치인 사회라면 가장 존중의 의미로 쓰일지도 모른다. 말이 칼이 되지 않도록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하여 서로를 존중하고 어려움을 헤아리는 배려가 필요하다. 그것을 실천할 때 당신의 말은 칼이 아닌 향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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