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에 길을 묻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길을 묻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09.0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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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호(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객원교수·前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오동호
오동호

가을이 온다. 푸른 하늘을 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어디가 좋을까? 아무래도 바다보다는 산과 들, 도시보다는 한적한 시골이 가을에 더 어울린다. 최근에 ‘월간 산’이 여론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5년 내에 꼭 가보고 싶은 해외명산 10곳을 선정한바 있다. 1위가 히말라야고 2위는 알프스, 3위는 ‘산티아고 순례길’로 나왔다. 또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 순례자협회’에 따르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순례자 수가 한국이 세계에서 다섯 번째 정도로 많고 유럽 이외의 국가 중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많단다.

자,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이 무엇인가? 스페인과 프랑스, 포르투갈의 산과 들을 지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천 년간 이어져 온 성지 순례길로 시작되어, 지금은 한해 50만 명 정도가 종주하는 자기성찰의 길이고 자연교감의 길이기도 하다. 필자도 작년 가을에 3개월 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바 있다. 프랑스의 르 퓌(Le Puy)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 초입의 생장 피에 드 포르를 지나 산티아고(Santiago Compostela)에 도착한 다음, 다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이어지는 2000㎞의 대장정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에도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마주한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광, 천년의 순례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마을과 도시, 동고동락했던 이국의 순례자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머나먼 이국의 땅 산티아고 순례길로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이유는 뭘까? 다들 세상의 삶이 쉽지만은 않다. 늘 뭔가 불안하고 힘들어 한다. 청춘들은 청춘들대로 방황하고 있다. 지나친 경쟁의 전쟁에서 지치고, 불공정한 플레이에 분노하고 있고, 불투명한 앞날에 암울해 하고 있다. 별로 안녕치가 못하다. 또 우리네 중장년들은 어떠한가? 평생을 열심히 살아왔지만 짊어져야할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상실과 우울, 불안과 초조의 마음이 불현듯 나타난다. 별로 행복하지가 못하다. 이럴 땐 삶의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그냥 한없이 마냥 걸으면서 우리의 지친 영혼을 위로해 줘야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찾아가는 길, 그 것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서는 이유가 아닐까. 필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은 것도 삶의 새로운 전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33년 공직의 긴 여정에서 막 벗어나는 순간 황야에 버려진 한 마리 사슴에 불과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하나의 매듭이 필요한 것이다. 인생 1막 정리 없이 인생 2막을 평온하게 맞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요동치는 격정을 진정시키는 마법, 그것이 산티아고 가는 길이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많이 힘들어 한다. 기업인은 기업인대로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또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사는 일용직은 물론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 한 번 자문해 보자.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모든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라고 시작한다. 그렇다. 작금의 우리의 어려움도 다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국가는 무엇이고 공동체는 무엇이며, 또 리더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 어려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각자의 위치에서 찬찬히 들여다보고 답을 내놓아야 한다.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 끝없이 걸으면서 지독한 고독 속에서 고요를 느껴보자. 그리하여 저 ‘산티아고 순례길’에게 그 길을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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