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경술국치, 그리고 지금
임진왜란, 경술국치, 그리고 지금
  • 경남일보
  • 승인 2019.09.0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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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효(객원논설위원)
정영효
정영효

세계사에서 우리나라는 외세로부터 많이 침략을 받은 나라 중 하나다. 고조선시대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5000년의 유구한 역사 동안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 북쪽 대륙쪽에서는 중국 한족을 비롯해 거란족 몽골족 만주족 등이 수없이 외침을 했다. 남쪽 해양쪽에서는 왜국(일본)이 툭하면 해안가를 침략해 수시로 노략질을 일삼았고,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운 무력 침략도 했었다. 한반도가 삼국통일 이전의 작은 나라 였을 때도, 통일 이후 국력이 커졌을 때도 크고 작은 외침은 끊임없이 없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굉장히 좋은 위치, 즉 대륙과 해양 진출을 위한 관문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외침에서도 가장 피해가 컸던 외침은 단연 임진왜란(1592~1598년)과 일제강점기(1910~1945년)를 꼽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모두가 일본이 자행한 침략이다. 대부분 외침은 피해가 일부 지역에 그쳤고, 단시일에 끝났다.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때에는 오랜기간 동안 우리나라 전역이 피해를 입었다. 살상과 약탈, 핍박으로 인해 무고하고 선량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전 국토가 황폐·피폐화됐다. 당시 일본이 저지른 반인도적 만행은 차마 입으로 말하기 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극악했다.

그리고 400여년과 100여년을 되돌아 일본이 또다시 우리나라 침략을 감행했다. 이번에는 경제 침략이다. 지금 국내외적으로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 그때의 상황과 비슷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16세기 말 국외 상황을 보자. 중국은 명나라가 쇠락하는 반면 후금(청)이 부상, 명청이 교체되는 혼란기였으며, 일본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해 조선 침략의 야욕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조선의 지배층은 동인과 서인으로 서로 갈려 권력쟁취에만 골몰, 분열과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일본에 강제병합 당하기 전 19세기 말 상황도 마찬가지 였다. 국외적으로는 일본을 비롯해 청국, 러시아, 미국, 영국 등 세계 열강들이 힘이 약한 나라를 강제 병합하던 패권주의,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시기였다. 일제는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에도 조선은 친일, 친러, 친청, 친미파로 갈려 권력싸움만 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라를 통째로 넘겼던 매국노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다. 나라를 빼앗기는 경술국치(1910년)의 수모는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국제 정세를 보자. 자국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패권주의, 제국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시대 상황이 다시 도래된 듯 하다. 일본이 경제 침략을 했음에도 지금 대한민국은 내분과 갈등이 그때 못지않게 심각하다. 오히려 국론분열이 더 심하다. 불행했던 역사가 재연될까 우려스럽다.

하지만 침략국 결말도 비참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 중에 죽음을 맞았고, 그 후손과 추종자들의 말로도 비참했다. 당시 일본 백성들의 삶은 더 피폐해 졌다. 19세기 말 조선 침략을 주도했던 이토 히로부미 역시 안중근 의사에 의해 단죄됐고, 추종자들도 전범으로 낙인찍힌 채 처형됐다. 일본 국민들은 원폭으로 수만명이 숨지는 참사를 겪었고, 그 고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 역사에서 일본 국민의 삶이 가장 힘들었고, 참혹했던 시대가 임진왜란과 조선강점기 전후였다. 그리고 침략 주도자와 추종자의 최후는 비참했고, 자신의 나라에는 더 큰 피해를 입혔다.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아베 총리는 깨달았으면 한다. 더 이상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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