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인사,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
코드 인사,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
  • 경남일보
  • 승인 2019.09.1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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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진주교대 교수)
흑인 인권을 위해 노력해온 서굿 마셜을 위해 미국이 보상한 것은 그를 최초의 흑인 대법관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미국의 인종차별과 편견의 시선과 싸우는 데 큰일을 했다. 그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는 영화 ‘마셜’(2017)에 잘 반영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법조인 사회에서 지금도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 되려면 대체로 ‘서오남’이어야 한다. 서울대 나온 50대 남자 말이다. 올해 헌법재판관 임명을 두고 말이 많았다. 일단 이미선은 그 서오남에서 벗어났다. 지방대 출신에 49세에다 또 여자이다. 일단 대통령의 인사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경력의 적절성, 증여세 탈루 의혹,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주식투자의 문제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은 정치적인 판단을 내릴 소지가 있는 인사를 피해야 한다. 국가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재판마다 법적이고 양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어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을 중용해야 한다. 잘못하면 3권분립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만 해도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세간의 말들이 무성하다. 일 년 내내 이어져 오고 있는 형국이다. 4선의 국회의원이며, 또 42억의 재산이 있다고 잘 알려진 금수저 정치인이 장관이 되었다. 명망 있는 교육계 인사를 마다하고 운동권 출신의 교육부총리 임명을 강행하였다. 인도 대통령의 추천사를 자녀의 대학 입시에 활용한 이가 장관 후보자로 대기 중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례를 거쳐 지금은 조국 사태에 이르러 정점에 이른 감을 주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에서 언어와 문자는 접촉 코드가 강하다. 점착적이어서다. 반면에 영상과 상징은 접촉 코드가 약하다. 휘발적 성격이기 때문이다. 점토와 휘발유를 각각 연상하면 된다. 따라서 코드 인사란, 공동의 기호, 공통된 약속이 전제된 접촉 코드가 강한 인사, 다시 말하자면 공통된 약속, 공동의 이해관계가 암묵적으로 전제된 인사를 가리키는 것이다. 유대 관계가 점토처럼 끈끈한 인사 말이다.

내가 최근에 한 달간 파리에 머물렀는데, 알게 모르게 견문을 적잖이 넓히고 돌아왔다. 파리는 인종 백화점이었다. 모든 인종이 모여 살고 있었다. 프랑스 백인들은 대 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아랍계 사람을 좀 경원시한다. 종교의 차이도 있고, 테러 위험성도 다른 인종에 비해 높고. 속으로는 미워 죽겠다는 그 아랍계 인물도 능력이 있으면, CEO나 장관으로 과감히 중용하는 곳이 바로 프랑스다. 한국계 입양녀가 성장해 장관이 되었다는 사실도 프랑스의 적재적소형 인사이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진영 논리가 개입된 게 코드 인사가 아닌가? 진영 논리는 선택적인 정의이다. 선택적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보편적 정의라야 정의가 살아서 숨을 쉰다. 진영 논리에 빠져든 사람일수록 선택된 정의에만 사로잡히고 만다. 보편타당한 인권문제, 심오한 인간성의 깊이 등과 같은 소재에서, 누구나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데서 보편적인 가치의 판단이 숨어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이발사의 딸이며 지방대를 나와서 그 사람을 선택했다고 함부로 말을 해선 안 된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상위 1%의 부모들끼리 자녀의 ‘스펙(인턴) 품앗이’를 나누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오비이락인가? 코드 인사도 코드 인사이지만, 올해 요직을 차지한 부총리, 헌법재판관, 장관들은 왜 한결같이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상위 0.1% 안에 드는 사람이어야 하는가도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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