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일본인(2)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일본인(2)
  • 경남일보
  • 승인 2019.09.1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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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서울대학교재외동포교육 자문위원장)

지난 2013년, 경상남도교육청에서는 당시 고영진교육감의 학교교육 정책에 따른 나라사랑 교육의 일환으로 경남지역 종군 위안부 생존자 중 최고령인 김복득 할머니의 구술을 녹취하여 ‘증언록’이라는 책을 발행한 바 있다. 아울러 일본 제국 군대의 만행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리기 위하여 일본어, 영어, 중국어 등의 외국어로 번역했는데, 일본어판이 우선 먼저 출판되었다.

일본어판 증언록은 일본국 수상 관저를 비롯한 외무성과 문부성, 그리고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의 각 교육장(한국의 교육감에 해당)들에게도 송부되었다. 그에 따라 경상남도와 국제교류 자매 현이었던 야마구치현과는 해마다 상호 교류로 오고 가던 일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었다.

당시 김해대청고등학교 문양수 교장은 일본어판 번역위원회의 부위원장 소임을 맡아 번역진을 구성하기 위한 전문가, 일본학과 교수, 교정 및 감수자에 대한 섭외 등, 여러 일을 맡게 되었다.

경남방언으로 구술(당시 증언자는 아흔이 가까운 나이로 표준어에 거의 동화되지 않은 경남방언을 구사함)된 증언 내용을 가급적 원래의 뜻과 분위기 등을 살려 번역하려면 어떻게 할까 고심하던 끝에 생각해 낸 것이 경남 방언을 잘 알고 있는 일본인을 찾는 일이었다. 마침 이십 수년 전 한국인과 국제 혼인하여 창원에서 거주하는 재경남일본인부인회 회원들 가운데, 이치노세카즈코씨와 사이토요시코씨 두 분을 문교장이 섭외하여 교정을 부탁하였다.

그런 다음, 순수한 일본인의 관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감수할 사람은 어떤 이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떠 오른 이가 요시이아키라 선생이었다. 국제전화를 걸어 부탁했더니 흔쾌히 승낙하여, 요시이 선생은 경남교육청이 발행한 위안부증언록 일본어판을 최종 감수한 사람이 되었다.

당시 그는 일본 지바현의 공립고등학교에 재직 중이었는데, 책의 판권에 넣을 감수자의 직함을 일본국 고등학교 교사로 해야 할지, 아니면 일한관계사연구회 회장으로 해야 할지를 국제전화로 의향을 물었더니 공립학교 교원이라 밝혀도 괜찮다고 하였다. 하지만 염려스런 마음에 이튿날 다시 전화를 했더니. 일본 우익 단체의 눈에 드러날 우려도 있으니 일한관계사 연구회장으로 하는 편이 낫겠다고 하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고 한다.

그가 경남교육청과 인연을 맺게 된 그 해 말, 그는 일한관계사연구회 주최의 제4회 한일교육교류 행사차 고등학생들을 인솔하여 서울을 방문했다. 그 해 서울 방문은 학생교류 행사와 함께 망우리공동묘지 탐방이 주된 목적이었다. 문교장도 사전에 연락을 받아 안내차 함께 동행하였는데, 일본인 덕분에 말로만 듣던 망우리 공동묘지를 생전 처음으로 둘러보는 경험을 하였다고 문교장은 말했다. 모처럼의 한국 방문에 망우리공동묘지 탐방이라니 처음에는 의아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해 따라 유난히도 추운 겨울 날씨에다 며칠 전 내린 눈 탓으로, 잔설 속 오르막길을 미끄러져 가며 이십여 분을 걸어 어느 묘소 앞에 도착한 다음에야, 그들이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 묘소의 주인공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이미 고인이 된 조선총독부 산림청 공무원이었던 아사가와타쿠미라는 일본인이었다. 묘소 앞에는 아사가와타쿠미의 공덕을 기리는 두 종류의 기념비가 서 있었는데, 비문에는 각각 ‘조선인을 사랑하고 조선인에게 사랑받은 사람’,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인을 사랑하며, 한국의 산과 민속에 몸 바친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요시이 선생은 일한관계사연구회보 가이쿄(海橋) 71호(2014년 2월 발행)에서 당시의 망우리공동묘지 방문을 이처럼 기록하고 있다.

“우리들이 염원해 온 아사카와다쿠미의 묘소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연구회가 십 년째 펼쳐 왔던 꾸준한 한일교류의 축적의 결과이며, 나아가 한국과 일본의 고등학생들은 물론, 우리 연구회에도 아주 의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조선인보다도 더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바로 그 주인공의 발자국을 찾아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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