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에서 만난 연리수 '화합의 손길'
저도에서 만난 연리수 '화합의 손길'
  • 경남일보
  • 승인 2019.09.1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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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갑철 (경남과기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금단의 대통령 섬 저도가 오늘부터 일반인에 시범개방 된다. 47년간 민간인의 접근이 통제된 섬에는 그동안 자연 속에 평화롭게 자라난 수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지난 7월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시민대표단이 저도를 방문해 시범개방을 알리는 행사가 있었다. 이날 대통령과 함께 저도를 탐방하고 돌아온 경남과기대 추갑철 교수가 일반인 입도를 앞두고 저도의 연리목 이야기를 전해왔다. 산책길 아래 자리한 곰솔과 말채나무의 연리지인 저도 사랑나무 이야기를 추 교수의 글로 만나본다. /편집자주
(저도 해변의 곰솔과 말채나무 연리수. 사진제공=추갑철 교수)

 

그리스 신화에 태양의 신이 착한 부부를 피나무와 참나무로 만들고, 그 애정의 도타움을 칭찬해서 연리수(連理樹)로 만들었다고 한다. 피나무와 참나무의 줄기가 붙어 한 나무로 되었다는 것인데, 피나무는 결국 참나무의 사랑하는 아내 꼴이 되고. 이들 부부는 백년해로하다가 한날한시에 죽은 뒤 나무가 되어 다시 오랜 생명을 누렸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종류가 서로 다른 나무끼리 붙어 연리(連理)가 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나 커다란 권능을 가진 신은 능히 그러한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러한 연리는 부부간 사랑의 상징으로 되었고, 집안에 연리수가 있다면 그것은 그 집안에서는 대단히 기쁜 일이 있을 징조로 여겼다. 그래서 집안에 연리수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진나라 시대 자야가(子夜歌)라는 시가 있는데, “연리수를 보지 못하였습니까…뿌리는 서로 다르지만 줄기는 하나가 되어 서 있지 않습니까” 하는 시구가 나온다. 그렇다. 뿌리는 서로 다르지만 줄기는 하나가 되어 서로 맞붙어 있으니 그것이 하나됨이 아니겠는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하나됨을 기대하는 시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조사를 목적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지만 연리수를 그리 자주 본 것은 아니다. 언젠가 땀 뻘뻘 흘리며 울릉도 성인봉에 올랐다 솔송나무와 주목이 한 그루의 나무로 자라는 것을 보았고, 북한산에서는 참나무들끼리 남의 가지를 내 가지처럼 여겨 내 몸에서 나온 가지처럼 잘 키워 내는 나무도 있었다. 또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다 허물어진 경찰서 건물 둥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육백 살 회화나무 둥지에 움을 튼 커다란 가중나무도 보았었다. 구름 위에 봉우리가 있다고 하는 운악산에서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용트림하다가 맞붙어 자라는 것을 본 적이 있었고, 단종 대왕을 폐한 삼촌 세조와 그의 아내 정희왕후가 고이 묻혀 있는 광릉 한구석에 자리한 졸참나무가 사이좋게 맞붙어 커다란 투(透)를 그려내며 자란 것도 보았고, 독립 기념관 너른 뜰에서 느티나무 한 그루 가지가 서로 얽혀 마치 작은 투를 지어내며 옴팍 옴팍 자란 모습은 가히 어렵게 살아왔던 우리 민족의 역사를 역설하는 것 같아 가슴 뭉클했었다. 삼척에서는 신흥사 절집 마당에 다소곳이 뿌리를 내린 배롱나무 갈라진 가지 틈으로 족히 삼십여년생은 되었음직한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것도 보았었다.
모두들 연리수라 하겠으나 하나같이 서로 다른 나무들이 의좋게 맞붙어 자라는 모습은 기이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모습들이었다. 특히나 신흥사 절집 마당에 자라고 있던 배롱나무에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모습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였다. 맨들맨들 수피가 매끄러운 배롱나무 줄기에 매달린 이파리들이 넓죽넓죽 도톰한가 싶더니 하늘 높이 솟아오른 나무는 다름 아닌 소나무라.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한 아름은 될 성싶은 배롱나무 줄기가 소나무 줄기를 감싸 안은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껴안기도 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상례이지만, 나무들끼리 껴안고 사이좋게 자라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참으로 사이좋은 나무로구나를 연발케 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수밖에.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는 사이라면 누가 보아도 부러움의 대상이 될 테고. 신비롭기까지 한 연리수의 모습은 다투고 싸우는 인간 세상을 순화하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뿌리 연리야 자주 보는 현상일 수 있겠으나, 줄기 연리는 쉬이 볼 수 없는 현상이고 보면, 그동안 내가 보았던 참나무들끼리의 가지 연리나, 솔송나무와 주목의 가지 연리나, 회화나무와 가중나무의 한몸 된 가지 연리나, 소나무와 잣나무의 줄기 연리나, 배롱나무와 소나무의 가지 연리가 순전히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것은 그만큼 나무들도 다른 나무들을 사랑하고 있음에랴.
사람들은 사랑이 식었다고 하면 금세 헤어지기를 밥 먹듯이 한다.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수없이 많은 세월을 정답게 살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이 맞지 않는 일이 있으면 금세 헤어지고 마는 세태. 그것은 인간 세상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 그러나 나무들은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고 생을 함께 하고자 한다면 여지없이 연리수로 변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한 몸이 되면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하나의 나무로 살아야 한다는 것. 하나의 연리수, 그것은 인간 세상 누구도 쉬이 모방할 수 없는 나무만이 가진 독특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다른 나무에 내 팔을 기대어 붙이고 세월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큼 아름답고 기이한 일이 어디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같은 종(種)이 아니라고 해도 어려울 때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은 나무들의 사회가 그만큼 정이 넘치는 사회, 사랑이 풍족한 사회라 아니할 수 없고.
그러던 차, 이곳 저도에서는 참으로 희한한 연리수라고 해야 할 지, 연지지라고 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연리지목을 만났다. 자연에서는 보기 어려운 곰솔(침엽수)과 말채나무(활엽수)가 연접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보통은 침엽수면 침엽수끼리 활엽수면 활엽수끼리 연리수와 연리지를 형성하는데 말이다. 연리지목(連理枝木)이란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지상부 일부가 연결된 나무를 말한다. 뿌리가 다른 나무의 수간이나 가지가 맞닿아 오랜 세월이 지나가는 동안 한 몸이 된 것으로, 사람이 사랑하는 형상과 닮았다 하여 예로부터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연인 사이, 친구 사이의 사랑과 화합을 나타내는 귀한 나무로 여겨왔다. 더구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곳에서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갈등 관계의 사람이 기도하면 화합이 되고, 사랑하는 연인이 기도하면 사랑의 열매를 맺고, 부부가 기도하면 금실이 더 좋아지고, 자식이 없는 부부가 손을 잡고 나무를 돌며 기도하면 자식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걸 보면 연리수나 연리지, 이곳 저도의 연리지목은 모두 행복과 사랑, 화합을 소망하는 사람들의 소망이 오롯이 이 나무들로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추갑철 경남과기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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