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학술지, 그 등재의 촘촘한 내막
학회 학술지, 그 등재의 촘촘한 내막
  • 경남일보
  • 승인 2019.09.1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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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재(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회장)
정승재<br>
정승재

사냥꾼을 아버지로 둔 아이는 짐승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무서움과 혐오감은 상대적으로 적다. 사냥하는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포획된 짐승의 습성을 가까이서 살필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아버지로 부터 숙련된 사냥 기술과 짐승을 다루는 지혜를 습득하고, 잡힌 짐승의 판로 등 용도와 처리 능력을 자연스럽게 연마하게 된다. 아버지 지인들과의 인간적 정분을 대물림 받기도 한다. 일생을 통해 때로는 같이 활동하는 동료, 사냥 환경을 제공하는 공동체, 정육점이나 박제상인과 같은 공급처 사람들과의 어색하지 않은 도움과 지도를 받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학교 등에 종사하는 교육자의 자녀는 상대적으로 배움과 진학을 위한 학습환경을 확보하는데 유리한 여건을 갖는다. 천부적이거나 일상생활을 통해 그 영역의 기능인 된다. 상급학교에 입학하는 전형방식 등을 무리 없이 듣고, 부모가 형성된 인맥으로 부터 보호와 보살핌을 받기도 한다. 아들은 아버지. 딸은 어머니 혹은 그 반대 상관으로 부모는 자녀의 모형모델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인간의 1차적 교육환경, 비형식교육의 전형이면서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학의 기초다.

다른 얘기다. 교수를 비롯한 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연구단체인 ‘학회’ 대부분은 ‘학회지’ 이름의 학술지를 발간한다. 학회는 정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에서 요구하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기준과 다난한 과정에 따라 등록된다. 전국 단위로 산재한 대학교수 등 교원의 임원 및 회원 참여가 필수화 되어 있다. 각 학회의 수준과 급(級)도 모두 같지 않다. 창립이후 몇 년의 경과에 따라 ‘등재후보지’ 신청이 가능하고, 그 단계를 거쳐 온전한 ‘등재지’로 격상되는 절차가 있다. 대체로 그렇다.

연구자가 논문을 작성하고, 제출하여도 모두 ‘한편의 논문’으로 인정받는 게 아니다. 대학부설 연구기관이나 각 학회 학술지에 실려야 그것으로 판정된다. 학회마다 엄연한 편집위원회가 구성되어 있고, 위원장과 위원은 상당한 끗발을 발휘한다. 대부분의 교수 등 연구자는 해당 전공 학회 회원이 되어, 학술지 등재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학술지에 실린 논문은 실적을 위한 교수들의 것이거나, 일정한 학위나 연구실적을 갖고 전임교수가 되기 위한 신참 학자, 때에 따라서는 박사학위 취득을 목표로 특정 교수의 논문지도를 받는 석·박사과정 학생들의 생산물이 대부분이다.

직무에 따라 옆에 있는 사람이나 매일 봐야 하는 동료뿐 아니라 수십년간 인간적 정분을 나눈 사람들간의 묵시적 상조(相助)라는 게 있다. 선공후사니, 멸사봉공과 같은 교훈이 있다. 하지만 가능할 범위가 있는 것이다. 이름하여 ‘알음알음’이라는 세상사는 사람들 간의 섭리라는 게 있다. 사냥꾼 가계에서 사냥꾼의 2세나, 교육자 집안에서 교육자가 비교적 자주 나오는 자연스런 현상이 그 연상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온정적 연고주위가 행정학에서는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리로 단정하지만 말이다.

법무부장관이 된 인사 여식의 고교시절 때 있은 학회 학술지 등재는 그 범주를 한참 벗어난 사건이다. 고교생 활동의 장(場)이 결단코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연륜과 최고급 해당 학회, 그 회원의 명예를 치명적으로 떨어뜨렸다. 한 학교에 1명 정도의 영재, 한 지역에서 나올 만한 수재, 전국에서 한 두명 나올 천재라 한들, 가능한 일로 보기 힘든다. 용인될 ‘알음알음’의 부산물이 못된다. 봐 줄 것을 봐 주어야지, 학문적 결실을 알량히 본 작태로 정상적 연구자의 모욕에 다름 아니다. 여느 학회가 규정한 연구윤리를 차치하더라도, 등재를 천거한 지도교수의 ‘그런 짓’은 허용될 온정으로 볼 수 없다. 음서(蔭敍)를 떠올리게 하는, 학자의 양심을 저잣거리에 내 던진 수치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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