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98] 오어사와 오어지 둘레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98] 오어사와 오어지 둘레길
  • 경남일보
  • 승인 2019.09.2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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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지고도 진정한 승자로 남은 원효대사

원효대사가 여러 가지 불경을 풀이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나 스승인 혜공스님에게 가서 물었을 정도로 두 스님은 서로 스스럼없이 교유했다고 한다. 원효대사와 혜공스님이 수도 생활하던 어느 날, 서로의 법력을 겨루고자 계곡에 있는 물고기를 잡아 한 마리씩 삼킨 뒤 변을 보았는데,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다른 하나는 물을 따라 흘러내려갔다. 혜공스님이 원효대사를 가리키면서 ‘그대는 똥을 누었고 나는 물고기를 누었다’(여시오어 汝屎吾魚)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이런 전설 같은 일이 있은 뒤로 이 절을 오어사(吾魚寺)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 전설을 되짚어 보면 혜공스님은 생명체를 생명이 있던 제자리로 되돌려놓는 신통력을 발휘했고, 원효스님은 일반인들처럼 물고기를 먹고 그 소화물을 변으로 배출한 것으로 보아 두 스님의 내기에서 원효대사가 졌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원효대사는 스님들과의 도력 내기나 일반 민중들과의 내기에서 대부분 졌다고 나와 있다. 그렇게 짐으로써 상대를 높이고, 양보와 배려를 통해 자신을 낮춤으로써 수많은 민중들의 마음을 얻게 되었으며 마침내 진정한 승자가 된 사람이 원효대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스님이 법력을 겨룬 곳이 지금의 오어사 앞 오어지(吾魚池)가 있는 계곡이다. 오어사는 이러한 전설로 인해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지만, 좌우에 자장암과 원효암이 오어사를 세상에 알리는데 크게 일조를 했다. 기암절벽인 계곡 사이에 북쪽에는 자장암, 남쪽에는 원효암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풍경이 가장 빼어난 절을 포항 운제산의 품에 안긴 오어사와 오어사를 양켠에서 보필하고 있는 자장암과 원효암을 꼽고 있다.

 
 
◇녹음 짙은 오어지 둘레길

진주불교산악회(회장 임수근) 회원들과 함께 산사순례와 둘레길 트레킹을 겸해서 포항에 있는 오어사, 자장암, 원효암과 오어사 앞 인공호인 오어지 둘레길 탐방을 떠났다. 진주에서 출발한 버스는 세 시간 이상을 달려 오어지주차장에 도착했다. 호수변을 따라 포장된 길을 1.4㎞ 정도 걸어가자, 전설 속의 절인 오어사가 나타났다. 오어지 호수물이 절 앞까지 다가와 있고, 호수를 가로지른 운제산 원효교 출렁다리가 아주 멋있게 놓여 있었다. 먼저 자장·혜공·원효·의상 네 조사(祖師)가 머물며 수행한 불교 성지인 오어사에 들어서자, 절 입구에 찰피나무 한 그루가 당당한 자세로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열매로 염주를 만드는데, 열매 속에는 윤기가 반질반질한 단단한 씨가 들어 있어 염주 재료로 귀하게 쓰인다고 한다. 부처님께 절을 올린 뒤, 곧장 오어지둘레길을 걸었다. 오어사 앞에 있는 출렁다리를 건너자 둘레길의 전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숲길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잡목들이 많아서 그늘이 짙었다. 여름철 트레킹에 안성맞춤이었다.

호수면을 건너온 바람이 탐방객들과 동행해 줘서 더욱 시원했다. 길 위엔 거의 야자매트가 깔려 있었고, 가끔 나무 데크와 흙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평탄한 길이어서 어린이와 어르신들도 함께 트레킹하기에 딱 좋았다. 군데군데 쉼터와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었다. 1㎞ 정도 걸어가자 호수 가장자리에 우뚝 솟은 남생이바위가 나타났다. 물에서 놀던 남생이들이 바위 위에 올라와 몸을 말리는 곳이라고 이름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아쉽게도 햇볕이 너무 쨍쨍해서 그런지 남생이는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조금 더 숲길을 걸어가자, 물 위에 남생이 한 마리가 유영을 하며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한동안 남생이가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물의 색깔이 좀 특이함을 발견했다. 흐릿하면서 약간 오염된 물처럼 보였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둑을 높이는 공사를 하기 위해 물을 많이 빼낸 상태에서 며칠 동안 비가 많이 내려서 물빛이 흐린 것이지, 오염으로 인해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둘레길 중간쯤에 있는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원터골에서 오어사로 되돌아왔다. 원래는 오어지둘레길을 한 바퀴 순환하기로 했지만, 중간에 땡볕이 내리쬐는 포장길이 일부 있고, 자장암과 원효암 등 산사순례에 시간이 촉박해서 되돌아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선경의 배경이 된 자장암

오어사로 되돌아와 300m 거리에 있는 자장암을 순례하기로 했다. 원효암까지는 600m 정도 떨어져 있어 진주로 되돌아갈 시간이 빠듯해 자장암 순례길을 선택했다. 초입부터 심한 오르막이다. 가파른 나무계단길을 오르는 자체만 해도 수행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자장암, 아슬아슬 절벽 위에다 세워놓은 관음전은 정말 절경이었다. 한참이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확 트인 시야에 들어오는 오어사의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 속 선경과도 같았다. 아름다운 풍경과 시원한 바람으로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헹군 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탑을 참배하고 내려왔다.

자장암에서 내려오는 길,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아니면 선경을 만나고 와서 그런지 온몸이 하늘을 날듯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고행(苦行)도 선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행복도 모두가 마음이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건너편 원효암에 머무셨던 원효대사가 당나라 유학길을 떠나던 도중에 동굴에서 하룻밤 비박을 했을 때, 갈증을 느껴 옆에 있는 바가지로 동굴 속에 있는 물을 퍼 마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바가지는 해골이었다고 한다. 해골바가지의 정체를 알기 전에는 꿀맛 같았던 물이 그 정체를 알고 나서는 구토를 일으킨 자신을 보며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날 이후, 가장 낮은 마음으로 민중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그들과 함께 힘든 세상을 건너며 행복해 했던 위대한 선각자, 원효. 져 줌으로써 마침내 승자가 된 거룩한 그 삶이, 작은 일에도 지지 않으려고 바동대다 허물만 안고 살아가는 필자에게 많은 가르침을 건네준 하루였다. 오어사와 자장암, 원효암을 물밑에서 씻기는 오어지의 호수면이 윤슬로 반짝이고 있었다.

/박종현(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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