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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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09.2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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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김춘복의 성장소설 ‘토찌비 사냥’(2)

식민지…해방…독재, 험난한 시대
질풍노도 성장의 시절 소설에 담아
스물한살 아버지 열 아홉 어머니
소꿉장난 같은 살림살이의 풍경들
김 작가의 ‘토찌비 사냥’은 전체 차례가 ‘마당씻이’ ‘제1부 천둥벌거숭이 시절’, ‘제2부 질풍노도, 그 광기의;시절’, ‘덧뵈기’ 순이다. 마당씻이는 프롤로그, 덧뵈기는 에필로그의 뜻이다. 제1부는 중학교시절까지, 제2부는 고등학교 시절까지를 포괄하는 시간대이다.

김 작가는 ‘덧뵈기’에서 “ 이 작품은 나의 성장과정을 직설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 발가벗은 나의 나신이다. 일제 강점기하의 식민지 교육, 해방후 좌우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대립, 한국전쟁, 자유당 독재정권하의 어용교육 등 굽이굽이 모진 세월을 헤치며 성장한 과정을 가감없이 그려내기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라고 썼다.

김 작가는 ‘마당씻이’에서 “밀양시 시렛골 산내면, 그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골짜기인 속칭 ‘시렛골’ 또는 ‘얼음골’로 널리 알려진 남명이 나의 안태고향이다”이라 말하고 얼음골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해발 일천 미터를 상회하는 태산준령이 사방을 병풍처럼 에워싼 쌈짓골. 큰 거랑이 골짜기 한가운데를 활대처럼 휘감고 흐르다가 화암산과 허리를 맞붙이다시피 한 사태방 모롱이를 비좁게 열며 휘돌아 나간 입구를 제외하면 날짐승도 마음대로 날아들 수 없는 이름 그대로 쌈지처럼 오목한 분지이다. 암마가 위치한 용솟골은 씸짓골에서도 가장 안구석이다. 장대를 걸치면 얹힐 정도로 바싹 다가선 앞 뒷산이 그나마 암마를 벗어나면 남북으로 점잖이 물러나 앉으면서 겨우 쌈짓골 하나를 이뤄 놓고는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이 다시 허리를 맞대고 우물 우물 춤을 추며 뻗어 나갔다.”

얼음골을 그냥 차 타고 가리산 고개로 넘어가다가 석남사를 내려다본 경험밖에 없는 필자에게는 이 깊은 골의 묘사는 신비하기 짝이 없다. 묘사의 묘기에 얹혀 허공을 지르며 아슬아슬 선회하는 산새같이 모이를 줍는 일을 그만 두고 노닐고 싶은 지경이 된다.

김 작가(화자)는 이곳 시렛골 안에 있는 동명이라는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이십리 바깥에 있는 ‘팔풍’이라는 면소재지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소년기를 보냈다. 그는 한평생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식솔들을 서울에다 남겨둔 채 어머니 홀로 살고 계시던 생가에 내려온지 20여년이 훌쩍 지나갔다.

유년기때의 김 작가의 가족으로는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김 작가까지 합쳐 다섯명이었다. 조혼을 하던 시절이었으므로 할아버지의 연세는 39세, 할머니는 41세, 아버지는 21세, 어머니는 19세에 불과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이 가족들의 나이대를 보아 어디 소꿉놀이하는 한 집의 풍경이라 할 만하다. 이때의 이야기가 소설로 이어진다.

나는 젖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할머니의 등과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자라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누이를 본 이후로는 밤마다 할머니의 젖꼭지를 물고 잠들곤 했다. 나는 태어난지 열달 만에 말문이 트이고 걸음마를 익혀 돌날에는 삼이웃에 떡심부름을 했다고 하니 꽤나 올되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면사무소 소재지인 팔풍까지의 아침 2십리 길을 매일 도보로 출퇴근했다. 일찍이 서당 공부를 접고 사설 남명강습소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직업학원에서 기계설계를 전공하고 나왔음에도 지방 공무원 공채시험에 응시했던 것은 아마도 뿌리 깊은 관존민비 사상의 영향이 컸으리라 추측된다. 아들이 면서기로 임용되자 마치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여 출사리도 한 양 할아버지께서는 큰 잔치를 베푸셨다고 한다.

네 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큼직한 선물을 하사하셨으니 면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제 시마노 자전거와 자노메라는 발재봉틀이 그것이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몰고 온 첫날, 마을 사람들이 경탄과 찬사를 연발하여 시승해 보기를 간청했지만 아버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자전거 점포 주인이 내한테 뭐라 캤는지 아는가? 마누라를 빌려주면 빌려 줬지 자전거하고 만년필은 절대로 다른 사람한테 빌려 줘서는 안 된다 캤는 기라요.’

김 작가는 그날 이후 매일 아침마다 아버지가 자전거 타고 가는 그곳은 무얼하는 곳일까? 팔풍이라는 그 마을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의 날개를 맘껏 펼쳐보곤 했다. 구름이 넘나드는 걸 보면 꽉 막힌 것 같지는 않을 듯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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