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태몽집(김희준)
[강재남의 포엠산책] 태몽집(김희준)
  • 경남일보
  • 승인 2019.09.2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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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몽집

/김희준

어머니 엎드려보세요 세상은 내가 껴안을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합니다 황금나무가 꿀을 품고 천장까지 자랄 것입니다 가지를 타는 흰 뱀은 환생을 꾀하고 거북이는 백사장 가득 알을 낳겠지요 중력에 눌린 명치가 무겁습니다 엎드린 잠은 딸꾹질과 통증을 유발합니다 그보다 더한 숨이 가쁜 금붕어가 유리어항에 있습니다 색색의 꼬리가 물결무늬로 퍼지고 물결무늬는 단어를 완성시킵니다 돌아서는 몸짓이 쉼표를 만드는군요 벌어진 곡선에서 잉어가 튀어나옵니다 금이 간 것은 어항입니까 침실입니까 엄청난 속력으로 죽음에 다가가본 적 있으신가요 젊은 피를 수혈 받은 실험쥐가 그러하고 황금나무 꿀을 받아먹는 입술이 그러하고 끝없는 흰 뱀의 허물이 그러합니다 허울 없는 오십 번의 생일에서 어머니가 껴안은 것은 무엇입니까 지천명에 다다를 동안 품은 혁명 하나 없다고 우울하십니까 그럴 땐 손을 벌려 바닥에 엎드리세요 손아귀에 힘을 주고 백사장을 안아보세요 수천의 새끼가 알에서 부화하는 중일 겁니다 온 몸에 털이 가득 나있던 어머니의 첫울음이 그 몸짓과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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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은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 했습니다. 하늘의 뜻을 알아야하는 하필 이 나이에 갱년기나 우울증이 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이 내 이름이 사라지고 생활이 사라졌습니다. 맞춤형 엄마로 아내로 자식으로 살아야하는 어머니의 삶을 통째 보듬는 ‘태몽집’은 품이 깊어 어디까지 걸어야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오랜 시간 접었던 자아를 다시 펼치기에 진정한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바라 살았는지, 질문이 무성합니다. 대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은 말줄임표가 대신합니다. 나를 잉태했을 때 꾸었던 어머니의 꿈은 어쩌면 어머니가 걷고자 하는 삶의 지표는 아니었을까요. 시인의 눈길에 연민이 가득합니다. 뜨겁고 애틋한 마음을 어머니에게로 열어둔 시인은 엄청난 속력으로 죽음에 다가가는 어머니와 마주합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껴안은 젊은 어머니의 혁명을 읽습니다. 안타까움과 공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오히려 유연해지는 시인은 바닥에 엎드려 백사장을 안습니다. 순간 수천의 새끼가 알에서 부화하는 광경을 상상합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첫울음을 떠올립니다. 손바닥에 하늘의 뜻이 비치십니까. 어린 시인이여, 당신의 무한한 애정에 눌린 통증이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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