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이기는 길
일본을 이기는 길
  • 경남일보
  • 승인 2019.09.3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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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김진석교수
김진석교수

2019년 한국의 여름은 훗날에 어떤 시기로 기억되고 평가될 것인가? 존 스타인벡의 소설 제목을 원용하면 1930년대 미국의 여름은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시대였다. 당시 미국은 실업률이 최대 25%에 이르는 대공황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 없이 생계가 막연했다. 굶주린 미국인들은 루스벨트 행정부의 농업조정법 때문에 멀쩡한 농축산물이 고의 폐기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더욱더 절망하고 분노했다. 농업조정법은 농산물 가격과 농가 소득을 지지할 목적으로 농업 생산을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이며,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1933년 5월에 시행한 법령이다.

한국에서는 다른 이유로 분노가 격랑처럼 넘쳐나고 있다. 분노와 불안이 한여름의 폭염과 열대야를 압도한 것 같다.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내리자 일본의 아베 내각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의 한국 수출을 통제하고 한국을 수출 간소화 국가(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무역보복 조치를 취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한국 경제에 타격을 주려는 일본의 의도와 조치에 분노한 한국에서는 일본에 가지도 말고 일본 기업제품을 사지도 말자는 ‘노노재팬’의 반일운동이 들끊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 지경이 되기까지 사태를 관리하지 못한 정부의 나태함과 외교무능을 탓하는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올 여름 한국인의 분노는 무더위보다 뜨거운 일상이 되었다. 분노의 칼끝이 겨누는 방향이 나와 다르면 ‘토착왜구’니 ‘종북좌빨’이니 하는 막말까지 서슴지않고 내편, 네편을 갈라 마녀사냥식의 증오를 내뿜는 양상은 과도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더 나아가 반일 종족주의와 의견이 다른 자국민을 ‘매국친일파’로 매도하고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과거 중국 마오쩌둥이 자신의 독재 권력을 위해 문화대혁명을 일으키며 홍위병을 부추겨 대규모 숙청과 경제파탄을 초래했던 것이 떠올라 섬뜩하기 조차 하다. 그래도 양편에 공통점이 없지는 않다. 언젠가 분노가 사그라 들었을 때 한국 경제와 안보상황은 어찌될지에 대한 불안감 만큼은 공통적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현재의 분노를 가열하는 또 다른 불쏘시개가 되어 요원의 불길처럼 사회 전체에 퍼져가고 있다.

한일 갈등을 계기로 한국의 경제와 사회가 더 발전하려면 ‘노노재팬’의 국민적 분노를 극일(克日)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국민들이 일본에 분노하며 바라는 게 있다면 우리의 산업경쟁력과 소득수준이 일본을 능가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이에 부응하려면 우리의 약점과 일본의 강점을 이해하는 지피지기(知彼知己)와 객관적 사실을 통해 판단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바탕으로 제도와 정책 방향을 바르게 고치는 일부터 해야 한다. 흔히 말하기를 “일본 경제가 우리 경제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 규모와 내수 시장”이라고 한다. 그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경제게임의 규칙에 해당하는 규제 시스템과 질적 수준, 즉 일본의 제도 경쟁력이 한국보다 낫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를 이기려면 무엇보다 먼저 시장을 규제하고 간섭하는 정책기조와 투자 및 소비활동을 위축시키는 각종 경제제도부터 개선하여 일본을 능가해야 한다. 어느 편이든 국민을 분열로 이끄는 막말 정치를 일삼고, 경제적 자유를 억제하는 각종 규제를 방치한 채 ‘노노재팬’의 죽창가를 부르는 것은 반일(反日)을 할 수는 있어도 극일(克日)을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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