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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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10.0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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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김춘복의 성장소설 ‘토찌비 사냥’(3)

신기한 ‘나지오’와 재봉틀의 시대
손재주 좋고 말재주 좋았던 어머니
전설에 수수께끼로 밤이 깊어가고…
작가가 써 내린 옛 시절 이야기들
오늘은 김춘복의 어린 시절 어머니에 관한 아깃자깃한 이야기를 들어볼까 한다.

“당시 외가는 대구에 있었다. 서너 살 무렵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두어 차례 가본 적이 있는데 버스나 기차를 탄 기억을 별로 없고 마당가에 있는 아주 커다란 수조 속에 노닐고 있던 수백 마리의 금붕어를 본 기억과 어느 사진관에 들어가 사진을 박았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와 나와 사진사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내의 어디에선가 계속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고 있는 게 나는 너무도 신기했다. “오매 지금 말하는 사람은 어데 있는데?” 그러자 어머니와 사진사는 큰 소리로 웃는 것이었다. “사람이 말하는 거이 아이라 저기 있는 저 나지오에서 말하는 거다.” “나지오가 어데 있는데?” “저 궤짝 우에 얹혀 있는 저거 아이가” 그러나 나는 꿰짝 위에 얹혀 있는 몇 가지 물건 가운데에서 어느 게 나지오인지 그게 어떻게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어 바느질하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호롱불 밑에서 한 땀 한 땀 어렵사리 손바느질을 하던 마을 부녀자들에게 재봉틀의 출현은 일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신통방통한 마술을 구경하러 오는 부녀자들의 발길이 연일 끊이질 않았다. 우리 가족의 옷만 짓던 어머니는 마침내 마을 사람들의 옷까지 지어주기에 이르렀다. 의뢰자가 당사자의 키와 나이를 일러주기만 하면 마치 마술사처럼 싹둑 싹둑 마름질을 하여 재봉틀로 드르륵 박아 단박에 옷을 지어내곤 했던 어머니는 단연코 그녀들의 우상이었다.

마름질의 비결은 당시 대구에서 양재학원에 다니고 있던 이모님이 보내준 옷본에 있었다. 한 조각 한 조각마다 연령과 용처가 기재되어 있는 옷본을 옷감 위에다 얹고 납작한 분필로 본을 뜬 다음 가위를 갖다 대기만 하면 마름질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또한 어머니는 겨울철에 접어들면 밤마다 마을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고대소설을 낭독하여 들려주는 전기수 노릇을 했다.”

김춘복은 자기 작품 ‘계절풍’에서 어머니의 전기수 이야길 쓴 바가 있다. 이를 인용해 보자.

“그녀는 원래 문장이 좋았다. 처녀시절에 군두목을 익혀 산골여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한자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내간체 문장과 흘림체 붓글씨 또한 바느질 솜씨만큼이나 정평이 나 있어 왕왕 원근 각지에서 제문을 청탁해 오기도 했다. 처녀시절에 손수 필사했다는 ‘춘향뎐’, ‘심청뎐’, ‘숙영낭자뎐’ 등의 고대소설과 ‘사친가’, ‘계녀가’, ‘화전가’ 등의 내방가사가 지금껏 장롱 속에 보관되어 있거니와 밤마다 그것들을 낭랑한 목소리로 낭독하여 동네 부녀자들을 많이 울리기도 했다.”

오늘날의 TV일일 연속극 같았다고나 할까,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갔다 싶으면 어머니는 한창 재미나는 대목에서 책장을 덮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여기까지입니다. 내일 저녁에 또 봅시다.” 그러면 부녀자들의 입에서는 동시에 장탄식이 터져 나오게 마련이었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할머니가 살얼음이 동동 뜨는 동치미에다 삶은 감자나 고구마 따위를 내어놓으면 어머니는 걸쭉한 입담으로 갖가지 전설이며 민담이여 수수께끼 보따리를 풀어 뒤풀이를 하곤 했다.

소설은 이어진다. “우리집 뒤쪽에는 마을의 수호신인 사오백년 묵은 당나무가 버티고 있고 바로 그 옆에는 요즘의 마을 복지회관에 해당하는 공실이 있었는데 나는 곧잘 동무들과 어울려 거기서 놀곤 했다. 너댓 살 때라고 기억된다. 공실마루에서 놀고 있던 나는 우연히 벽에 걸려 있는 현판에서 할아버지의 함자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성이 김자 외에는 한자로 읽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의 함자 바로 옆에 적힌 이름을 손바닥에 몇 번 써보고 한 달음에 집으로 달려가 마침 마당에서 이영을 엮고 계시는 할아버지 곁에 쪼그리고 앉아 나무꼬챙이로 써 보이며 물었다.

할부지예 할부지예 이렇게 쓴 글자는 무슨 자 무슨 자입니꺼예?

그러자 할아버지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는 것이었다. 니가 그걸 어데서 봤더노?

할아버지께서는 만면에 웃음을 담고 바다 해자 하고 물가 수자라 가르쳐 주면서 원동할배의 함자라고 일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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