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 시월(노수옥)
[주강홍의 경일시단] 시월(노수옥)
  • 박성민
  • 승인 2019.10.06 15: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강홍(진주예총회장)
시월

/노수옥

감자꽃 피던 마을을 지나

빈 수수밭을 지나

구월의 꼬리를 밀어내고 시월이 온다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의 몸짓과

모가지가 사라진 해바라기 밭도 지나왔다

정수리에 서리가 내린 시월

우듬지를 타고 오르던 물기가

공기층으로 흩어진다

휘어진 갈대의 허리에는 기러기 울음이 묻어있다

거두지 못한 늙은 호박의 이마 위로

찬바람이 다녀가는 밤

누군가는 밤새워 스웨터를 짜고

또 누군가는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고 있을 것이다

간이역은 귀를 세우고 놓쳐버린 발소리를 듣고 있다

바람의 속도가 빨라지면 저녁은 서둘러 창문을 닫고

속살이 붉은 가을의 내력을 읽는다

땅거미를 그러모아 이별을 준비 중인 시월

어디선가 씨 여무는 소리가 들린다

-------------------------------------------

나목이 단풍을 받아드리고 낙엽을 준비하는 쇠잔한 가지에 서늘한 바람이 스친다. 저 푸른 하늘의 구름마저 더욱 목덜미를 움츠린다. 누군가 다녀간 발자국 같은 늙은 호박의 모습이나 허리 늘어진 코스모스나, 누구의 이름을 애달게 부르는 풀벌레나, 이제 창문을 닫고 별빛을 헤아려야하는 저녁 무렵의 찬바람이나, 이마의 흰 머리칼을 넘기는 갈대나 10월은 모두가 시인이 된다. 문득 익어가던 것들의 속 터지는 소리를 듣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