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모(전 경남일보 국장)
한글날을 앞두고 다시 ‘훈민정음 상주본’을 생각한다. 또 한 해를 그대로 넘기는가. 우리 국민 손에 있는 민족 보물을 국민이 볼 수 없으니 늘 답답한 거다. 보물을 어쩌다 입수한 사람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훈민정음 해례본은 1446년 한글 반포 때 펴낸 그 목판본 한문 해설서다. 원본 딱 한 권이 있다.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간송미술관 소장본이다. 모두 33장(66쪽)으로, 세종대왕이 손수 지은 서문에 해설이 붙어 있다.
발견 당시 세종대왕의 서문을 포함하여 맨 앞 두 장이 찢겨 나간 상태였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국보 70호 ‘훈민정음’은 발견 무렵 누군가가 표지와 처음 두 장을 복원한 거다. 하지만 그 복원엔 몇 가지 오류가 있다고 한다.
이러던 중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동일 판본이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표지와 앞의 두 장도 온전하단다. 하지만 소유권 문제 같은 온갖 곡절 속에 한 민간인이 숨겨두고 11년째 내놓지 않고 있다.
그동안 온갖 국가 사회적 설득 노력을 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란다. 올가을 상주 지역 고교생들이 반환 촉구 서명 운동에 나서고 있지만 가능성은 절벽인 듯하다. 열쇠 쥔 사람은 1000억 원을 요구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가치를 1조 원으로 평가했으니 그 1할은 보상받아야겠다는 거다.
사정이야 어떠하든 국가가 우리 국민 손에 있는 초 국보급 보물을 10년 넘게 환수하지 못하는 건 한심하다. 현재 보관자에게 소유권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도 나지 않았는가. 책은 이 순간에도 삭아가고 있을 거다. 한글로 말글살이를 하는 이의 도리로 돌아온 한글날을 비껴갈 수 없겠기에 예전 글을 다소 끌어 쓰면서 훈민정음과 세종대왕을 잠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훈민정음 상주본, 어서 보고 싶다.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