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시대의 두 노래 (홀로 아리랑·라구요)
분단 시대의 두 노래 (홀로 아리랑·라구요)
  • 경남일보
  • 승인 2019.10.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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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진주교대 교수)
흥남철수의 수많은 피란민은 남한에 정착해 실향민으로서 오래 살아왔다. 이들이 이어온 현대사의 파란만장한 삶은 역대급의 관중이 동원된 영화 ‘국제시장’(2014)에서 잘 극화되어 있다. 흥남철수의 2세대가 부른 대중가요가 있다. 가수 한돌과 강산에가 그들이다. 이 두 사람이 작사하고 작곡하고 또 노래한 두 편의 대중가요는 분단 시대에 통일의 비원을 함축하고 있는 대중가요사의 주옥같은 명곡이다. 먼저 한돌의 ‘홀로 아리랑’(1989)은 이렇다. ‘저 멀리 동해 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이 노래는 싱어송라이터인 한돌이 1989년에 만들어 자신이 직접 불렀다. 그가 부른 원곡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듬해에, 가수 서유석이 불러 이 노래는 대중들에게 썩 잘 알려졌다. 서유석 이후에도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대중의 수요가 그만큼 있었다는 얘기다. 노랫말은 3절로 이루어져 있다. 한돌 자신이 독도에 머물다가 태풍 때문에 며칠 꼼짝없이 갇혀 있으면서 시로 쓰고, 또 곡을 붙였다고 한다. 홀로 아리랑이란 표제는, 홀로 독(獨) 자의 독도를 가리키는 기호적인 의미를, 한국인의 감정 속에 풍화작용해온 아리랑의 고유한 집단 연대감과, 멀리 홀로 격절되어 있는 고도(孤島)의 이미지가 부여한 외로움의 정서를 환기하는 기표로 대신한다. 노랫말 가운데 가장 마음을 사로잡는 부분이 있다면, 아마 짐작건대 제2절의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라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이로 인해, 이 노래는 통일의 집단 원망이 잘 반영된 노래임이 명백해진다.

이 노래는 노랫말을 떠나 음곡(音曲)의 차원에서 볼 때, 우리 가요사의 다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눈여겨볼 수 있는 건, 1980년대에 호소력을 얻은 민중가요의 한 전형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초반의 청바지 가수와 세대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포크 감성이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저 멀리 1930년대 신민요의 전통에까지 맥이 닿는다. 이 노래가 유행된 몇 년 후에는 강산에의 ‘라구요’(1993) 역시 대중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한돌과 강산에는 10년의 간격을 두고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흥남철수의 실향민들은 한 동안 여기에서 살았다. 전쟁이 끝나고, 사회가 비교적 안정되면서 그들은 여기저기에 뿔뿔이 헤어졌다. 한돌이 춘천에서 성장했다면, 강산에는 부산에서 성장했다.

강산에의 ‘라구요’는 자전적인 경험이 잘 담겨 있다. 제1절은 아버지의 이야기이고, 제2절은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노래가 이야기로 읽힐 때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돌아갈 기약이 없는 고향에 대한, 실향민의 그리움은 안타깝다 못해 차라리 애절하다. 노랫말의 행간에 숨어있는 통일에의 비원은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 노래는 일종의 포크 록이라고 할 수 있다. 한돌의 ‘홀로 아리랑’과는 포크 감성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음곡의 측면에서 볼 때, 두 노래는 확연히 구분된다. 강산에의 ‘라구요’는 한돌의 노래에 없는 소위 ‘뽕끼’가 있다. 한국인이 오래 즐겨 왔던 트로트 감각 말이다.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두고 온 고향에 가봤으면 하는 그 간절함은 피난 온 부모의 세대로부터 전해 받은 간접 화법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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