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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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10.1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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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김춘복의 성장소설 ‘토찌비 사냥’(4)

전시에 치른 중학교 국가고시서
터무니없는 점수로 부자가 부산행
채점 다시 하자 200점 되찾았는데
‘와이로’ 썼다는 오해 뒤집어 써
밀양 산내국민학교를 졸업한 김춘복은 1951년 7월 전시중이지만 중학교 진학을 위한 국가연합고사에 응시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소망은 ‘낙타가 바늘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부산중학교에 아들을 입학시키는 것이었다. 김춘복은 밀양읍내 부복초등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렀다.

마침내 발표날짜를 하루 앞둔 날 저녁 대문간에 들어선 아버지가 대뜸 호통부터 치는 것이었다. 도대체 시험을 어찌 쳤단 말이고? 교육청에 가서 채점 결과물을 수령하여 들어오는 교장선생이 본교생 성적을 살며시 본 순간 ‘수재 김춘복’의 성적이 말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공식 발표된 학교에서의 성적은 308점, 297점, 272점 순으로 이어지는데 고작 164점에 머물고 말았으니! 학교에서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담임선생이 시험지를 펼쳐서 김춘복을 앉혀놓고 오엑스 문제를 다시 테스트하니 결과가 200점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닌가.

즉석 채점을 마친 담임선생은 춘복의 아버지를 보고 “아재요(김춘복의 아버지가 담임의 처아저씨뻘) 도학무국에 가서 도둑맞은 점수를 찾도록 하이소” “과연 찾을 수 있을까?” “그럼요 지금 당장 가시이소. 괜히 비싼 차비 써가며 왔다 갔다 할 것 없이 아예 입학금까지 두둑하게 준비해 갖고 가시이소.” 춘복은 도둑맞은 점수를 찾으로 간다는 기쁨보다 난생 처음 부산 구경을 하게 된 사실이 더 기뻤다. 마침 그날따라 집앞에 부정임산물 숯을 반출하기 위하여 야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화물차가 한 대 있었다. 차비를 두둑히 주고 부자가 편승했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덩달이 출렁이는 밤하늘의 뭇별들을 바라보며 꼭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삼랑진 어느 여관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였다가 통금이 해제되는 꼭두새벽에 다시 차가 출발했다. 부산에 닿자 아버지는 이발소에 들어가 이발을 하고 나와서는 갈천할배댁에 들렀다가 아침밥을 먹고 필진이라는 아재를 찾아갔다. 방서방 아재라는 분인데 당시 도학무국 인쇄물을 도맡아 했으므로 도학무국에 지인이 많았다.

학무국장은 성적 확인에 대해 일언지하 거절했다. “어제도 밀양읍장이란 사람이 찾아와 채점을 확인했는데 어찌 됐는지 아십니까? 오히려 100점이 깎여버렸어요. 그짝 나지 말고 그냥 돌아가세요. 164점도 낮은 점수가 아니구만”그때 춘복이 아버지는 그 틈새를 놓치지 않았다.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채점이 완벽했다면 똑같은 점수가 나왔어야지 어째서 100점이나 감점이 됩니까? 164점을 다 잃어도 좋으니 답안지를 보여 주세요. 만약 제 말을 거부하면 지금 그 말씀을 신문사에 알리겠습니다.” 이 완고한 학부형의 말에 굴복하여 학무국장은 기다란 주산을 챙겨들고 따라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창고 앞에 당도한 국장은 황소 불알만한 자물통을 따고 방문자를 불러들였다.

창고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과상자 가운데에서 ‘밀양을구’분을 가려내어 김춘복 답안지를 찾아든 학무국장은 표지에 집계해 놓은 점수를 주판알로 튀기며 합산하기 시작했다. 3회분까지만 해도 170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춘복은 유유히 창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아버지는 “이거 보시오. 이러고도 할말이 있소?”아버지의 기고만장한 고함소리가 복도 밖에까지 흘러나왔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나 이거 그냥 넘길 수 없습니다. 신문사에 알릴 뿐만 아니라 일당과 교통비를 받아내고 말겠소.”

학무국장은 우리 부자와 방서방 아재를 지하에 있는 구내 휴게실로 안내하더니 차와 빵을 주문했다. 학무국장이 춘복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참 영리하게 생겼네. 아들을 참 잘 키웠습니다. 364점이면 경기중학에 들어가고도 남습니다. 아버지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더 왈가왈부하지 않겠습니다. “청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말해 보세요.” “경찰국 경비전화로 밀양경찰서 산내지서를 연결해 갖고 산내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하고 통화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산내면 전체를 통틀어 전화기라곤 오직 지서 한 군데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서방. 날세. 김선생 날세 자네 말대로 200점을 찾았네. 364점인기라. 하하하”

그런데 웃고 넘어가지 못할 일이 생겼다.합격자 발표는 물론 입학식까지 참관하고 나서 이들 자랑을 하려고 잔뜩 벼르며 밀양으로 돌아갔는데 고향의 사람들은 냉담했다. 돈을 한 가방 싸들고 가더니 ‘와이로’를 써 가지고 점수를 올렸다는 입소문이 당도하기도 전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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