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갑(가야대학교 교수·대외협력처장)
요즘 같은 가을밤에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듣다보면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옛말이 절로 떠오른다. 서늘한 가을밤에 등불을 가까이 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거나 그리운 사람에게 정성들여 손 편지를 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대학 시절에 해양대학에 다니던 친구와 새로운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깨달았던 것들을 나름대로 잘 정리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로 주고받고, 방학이 되면 밤새워 토론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던 그 시절의 경험이 나의 삶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첨단의 디지털 전자기기가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정보화시대로 접어들면서 순수하게 책 읽는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졌고, 책을 읽더라도 무한 경쟁사회에 살아남기 위한 지식과 정보를 얻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고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전자기기를 통하여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정보를 접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 디지털 읽기가 과연 만능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인지신경학자 매리언 울프(Maryanne Wolf) 박사는 ‘다시, 책으로’라는 최근의 저서에서 매일 접하는 수많은 정보들을 이렇게 가볍게 읽는 것은 단순한 오락일 뿐이지 깊이 있게 읽고, 깊이 있게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지는 못한다고 하였다. 울프 박사의 이런 생각을 접하면서 단순히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하여 보는 ‘killing time용 영화 ’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훑어보기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읽기’는 전체 텍스트를 지그재그 스타일로 재빨리 훑어서 맥락부터 파악하고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에 ‘종이 읽기’에 비하여 세부적인 내용의 파악이나 논리적인 판단에 취약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디지털 읽기를 계속하면 종이책을 읽으면서 만들어진 ‘깊이 읽기 회로’가 점차 사라짐으로써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비판적인 사고와 성찰의 능력, 이해와 공감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 디지털 읽기에 익숙해진 우리의 뇌는 종이 읽기 시절의 뇌로 다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서는 선천적인 능력보다는 꾸준한 노력에 의하여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습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하여 여러 자질들이 필요하지만, 겉핥기식의 책읽기보다는 종이책을 즐겨 읽는 멋진 습관이 무형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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