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대 전나무
학사대 전나무
  • 경남일보
  • 승인 2019.10.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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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2019년 5월에 본 학사대 전나무
링링으로 부러진 학사대 전나무
신록의 계절에 최치원 지팡이 나무를 찾아 길을 나섰다. 해인사 독성각 옆에 어깨 높이로 축대를 쌓고 가운데 두 아람의 전나무가 있다. 해인사 영상해설 ‘QR찍어보세요 핸드폰을 올려보세요’라는 앞서가는 안내판에 의하면,

학사대는 신라 말기의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857~?)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서(詩書)에 몰입하던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할 때 수많은 학이 날아와 경청했다고 한다. 당시 거꾸로 꽂아 두었다고 전해지는 전나무 지팡이가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가 아래로 처져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오는 길에, 고운은 가야산에서 은둔 생활을 하였다는 학습을 하고 학사대 전나무를 대하게 된다. 해인사 골짜기를 붉은 단풍이 물에 비쳐 붉게 흐른다하여 홍류동이라 불린다. 홍류문을 지나면 계곡물이 내려오다가 크게 꺾어진 안쪽에 농산정(籠山亭)이 있다.

물소리 요란하게 들릴 정자 앞에는 고운최선생둔세지(孤雲崔先生遯世地)라고 새겨진 돌비석이 서 있다. 둔세시의 마지막 구절은 ‘행여나 세상 시비 귀에 들릴세라(常恐是非聲到耳) 흐르는 물로 산을 둘러버렸다네(故敎流水盡籠山)’이다. 물소리로 세속의 시비 소리를 상쇄시키고 자연인으로 살겠다는 것이다.

농산정은 시의 말미에 있는 농산(籠山)에서 따 온 것이다. 최치원은 42세에 모든 공직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홍류동에 들어왔는데, 최치원이 머문 마을을 치원촌이라 했는데 치인촌(致仁村)이 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치인리(淄仁里)로 되었다.

학사대 전나무는 넓은 공간에서 경쟁이 없이 햇볕을 받을 수 있다. 중력에 반하는 길이 자람이 필요 없고 부피 자람과 가지가 옆으로 길게 뻗었다. 가지의 중간 부분이 아래로 드리워졌고 잎이 무성하여 바람의 저항을 많이 받을 것으로 염려되었다.

천년 전나무로서 너무 흠결이 없고 날씬하여 이것이 아닌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도 학이 날아와 경청했다는 전설과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 가지가 아래로 쳐졌다는 기록에 물증을 보자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심은 것으로 마음을 굳히게 된다.

지난 9월 7일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수령 250여년으로 추정되는 학사대 전나무가 밑동만 남기고 쓰러졌다. 15세기 조선 성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의 고운선생 사적 편에 ‘학사대에는 높이 100척(尺), 둘레 3장(丈)에 이르는 늙은 전나무가 자란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조선 후기 문신 최흥원의 백불암집에 1757년 해인사를 둘러본 후 ‘최치원 선생이 심은 나무가 말라버려 등걸만 남았다. 4그루의 나무를 그 곁에 심게 했다’고 기록했다. 898년께 고운선생이 심은 나무는 죽고, 또 나무가 쓰러졌거나 죽었고, 뒤이어 조선후기에 후계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추정된다.(경남일보 2019년 9월 8일자)

전나무가 쓰러진 한 달 뒤 학사대를 찾았다. 그 안내판은 ‘위험 출입금지’라는 경고문이 차지하고, 주변을 접근금지 띠로 둘렀다. 남아있는 나무둥치 위를 흰 천으로 덮어 무덤처럼 보이고 부러진 몸통은 담장 밑으로 누웠는데 속은 비었고 검게 변했다.

나무도 생물이라 나이 250년을 1100여년으로 알려졌으니 얼마나 무겁게 살아왔을까. 사람으로 비유하면 손자가 할아버지 나이로 살아야 한다면 속이 검게 타지 않겠는가. 후계목이라 밝혔다면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전설은 전해 오는 이야기이다. 안내판에 기록하면 사실이 되기도 한다.

탐방객들은 귀중한 전나무를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서운한 눈길을 보낸다. 위로하는 의미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하겠다는 알림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후계목을 심고 넘어진 전나무 몸통으로 의자를 만들어 쉬면서 학사대 전나무를 이야기하며 전설이 쭉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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