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경남일보와 진주정신
[창간특집] 경남일보와 진주정신
  • 경남일보
  • 승인 2019.10.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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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여는 철 걸음 '진주 정신'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에 대한 정의는 확실해 보인다. 따라서 천년 진주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역시 분명하다. 과거 사실에 비추어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보다 발전적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진주 역사 바로 알기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경남일보가 110주년을 맞았다. 대한민국 지방신문의 효시로, 한국 언론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진주만의 자랑스런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항일 민족지이자, 반 독재 반 부패를 기치로 창간된 경남일보는 두 차례에 걸친 강제 폐간에도 불구하고, 지난 110년의 세월동안 향토의 횃불로 자리매김해왔다. 부정하거나 변할 수 없는 경남일보가 지닌 역사적 가치이다.

경남일보 110주년을 맞아 언론의 역할을 되새김질하면서 불안한 미래를 억측하기 보다는 천년 진주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경남일보가 지니는 가치에 대해 성찰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동시에 천년 진주의 역사속에서 형성된 진주정신이라는 큰 틀 속에서 경남일보가 갖는 시대적 의미를 고찰해 보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 될 것이다.


진주역사의 속살이 빚어낸 진주정신

진주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거치면서 ‘주체(主體)·호의(好義)·평등(平等)’을 바탕으로 하는 진주정신이라는 고귀한 정신적 유산을 남겼다. 진주정신의 바탕인 ‘주체정신’으로 당당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고, ‘호의정신’을 바탕으로 불의(不義)에 항거하는 사회정의를 실천했으며, ‘평등정신’으로 지고지엄한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사회에 요청했다. 이것이 바로 진주역사의 속살이 빚어낸 진주정신의 핵심이다.

민족시인 허유는 그의 시(詩) ‘진주(晋州)’에서 ‘새벽잠 끝에 정수리에/퍼붓는 냉수 한 바가지/우리나라 정수리에 퍼붓는/이 정갈한 냉수 한 바가지/晋州에 와 보면/그렇게 퍼뜩 精神이/들고 마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처럼 진주는 그야말로 제 정신을 차리고, 또 제 정신을 가다듬고 살아야 하는 곳이며, 예나 지금이나 진주정신(晋州精神)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곳이다. 대한민국 역사속에 기록된 진주의 역사는 그렇게 진주시민의 자랑스런 유산이 되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진주정신은 우리나라 민권항쟁사의 기원이 된 1200년(고려 신종 3년) 고려민권항쟁에서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향리들의 탐학을 견디다 못한 공·사노비들의 민권 회복적인 항쟁과 정방의의 폭력적 반란을 진주의 민중들이 진압한 것이다. 진주정신의 출발점이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의 임진대첩(1592년)과 계사순의(1593년)는 진주인의 주체정신을 드높인 싸움이다. 임진년(1592) 진주대첩의 승리는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로 진주사민들의 국난극복의 의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듬해인 계사년 제2차 진주성전투는 7만명의 민관군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진주정신의 소름돋는 실천의 역사이다.

임술년 진주농민항쟁(1862년)은 조선 후기의 민권운동을 대표하고 있다. 진주를 기점으로 일어난 농민항쟁은 1894년 한 단계 발전된 농민운동이라 할 수 있는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진다. 진주정신의 역사적 계승이다.

진주에서 시작된 인권운동인 형평운동(1923년)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강조하는 반차별운동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전국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사회운동이다. 형평운동으로 인해 진주는 인권 평등 운동의 발상지이자,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남일보는 진주정신을 담은 그릇

경남일보가 천년 진주의 역사적 맥락에서 지니는 불변의 가치는 대한민국 지방신문의 선구자이자, 신문역사의 새로운 장(場)을 열었다는 점이다. 국운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던 1909년 10월 15일, 대한민국 최초로 ‘간악한 일제의 압제를 이겨내고 한국인이 지방에서 신문사를 설립한 지방신문’이 바로 경남일보인 것이다.

경남일보의 창간이 갖는 시대적 가치는 ‘주체·호의·평등’이라는 진주정신의 현대적 구현과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해야 한다. 더불어 진주의 역사적 맥락에서 고찰해 볼 때 천년을 이어 내려온 고귀한 정신적 유산인 진주정신의 범주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경남일보는 적어도 천년 진주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낸 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주정신은 임진왜란 임진계사년 진주성전투(1592년과 1593년)와 진주농민항쟁운동(1862년)에 이은 경남일보의 창간(1909년), 그리고 형평운동(1923년)과 개천예술제 창제(1949년)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계보로 정리되어야 한다.

더욱이 경남일보는 두 번의 강제폐간에도 불구하고, 110년의 신문역사를 꿋꿋이 이어가고 있다. 백성을 계몽하고 실업을 장려하며 항일 민족지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했지만, 1915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되었다. 하지만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반공·반독재·반부패를 기치로 중창간했으나 신군부의 등장으로 다시 강제 폐간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1989년 11월 25일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다시 복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남일보는 1909년 10월 15일 창간 이후, 무려 110년의 세월동안 민족과 진주시민 나아가 경남도민과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전국 지방지의 효시’라는 자긍심 아래 올바른 언론문화 창달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진주 역사에서 경남일보가 가지는 가치가 절대로 평가절하되어서는 안된다.


경남일보와 진주정신

경남일보와 진주를 따로 떼어 놓고 보기 어렵다. 진주가 곧 경남일보이며, 경남일보가 곧 진주이다. 경남일보의 역사 속에 곧 진주의 근·현대 11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으며, 향후 100년이 넘는 시간 역시 진주의 역사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언론환경 속에서 지역 언론의 위기설이 제기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지만 근원적 위기탈출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문을 여닫는 언론이 속출하고, 살아남은 언론도 생존의 위협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경남일보 역시 이른바 지역언론의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110년동안 겪었던 아픔과 상처들을 앞으로 또 다시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역언론의 위기 앞에서 경남일보 스스로 시대적 가치와 역사성을 훼손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경남일보의 시대적 소명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지역사회가 110년의 역사를 가진 경남일보가 지닌 역사적 가치를 발견하고 진주 역사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더불어 경남일보가 대한민국 지방지의 효시라는 자긍심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고 또 격려해야 한다. 건강한 경남일보가 건강한 진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경남일보는 진주정신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10년의 역사를 거울 삼아 진주역사의 속살이 빚어낸 진주정신에 부합하는 건강한 지역언론이 되기를 바래본다.
 
/황경규·진주향당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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