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 나는 너를 뒤통수로 읽는다
[강재남의 포엠산책] 나는 너를 뒤통수로 읽는다
  • 경남일보
  • 승인 2019.10.1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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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되게 당한 것도 같고 더 이상 남은 뒤도 없을 것 같은데

눈시울이 달라붙어 글썽거리는 뒤통수



뼈가 덜거덕거리고 모근이 뜨거워

앞을 돌리면

아무 것도 모르는 듯 잘 아는, 돌아선 뒤가 낯익다



다른 뒤들로 완성해가는

뒤의 길은

누구를 시원스레 쳐본 적 없어

호기 한 번 휘두르지 못한 을의 길

뒤통수가 밟는 뒤통수들은 그러므로

을과 을의 관계, 믿은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말과 통한다



소리 큰 단어들과 소리 없는 단어들은

꿈쩍도 않는 생각과 벌벌 기는 생각의 차이

갑과 을, 앞과 뒤, 거처하는 곳이 달라

뻔뻔하거나 겸연쩍다



차마 돌아볼 수 없어 방향 돌린 샛길은

길의 뒤쪽

수줍은 뒤통수가 천천히 방향을 꺾는다



가로등은 누구의 뒤를 닮았는지 구부정 기분을 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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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여름이 지났다. 그러는 동안 대책 없이 쪼아대는 태양에게 자두는 화상을 입고 나무는 순정한 색으로 물들지 못했다. 화상 입은 과일을 따서 개미가 지나는 길목에 놓아두고 미리 시든 나뭇잎도 같은 자리의 흙을 덮어주었다. 이들이 뿌리를 온전히 지켜줄 것이라 혼자 생각에 빠져서. 전혀 그럴 생각 없던 것이 타자의 생각으로 생각을 달리하지 않을까 그 마음에 빠져서. 그러면서 내 생각을 다른 것에게 강요하며 그것이 동기부여라 우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위험한 일이 어디 있을까. 믿었던 사람이 뒷담화에 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더구나 적당하게 눈시울 붉히며 스스로를 을이라 칭하며 피해자 코스프레에 능하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미처 눈물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느닷없이 갑으로 둔갑돼 버리는 일, 이 또한 난감한 일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을 때 눈물만한 것이 없다는 것에 익숙한 이는 스스로가 갑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걸 알기는 할까. 세상에 없는 착한 가면을 쓴 자칭, 을은 다른 을에게 그저 갑일뿐이다. “호되게 당한 것도 같고 더 이상 남은 뒤도 없을 것 같은데” “눈시울이 달라붙어 글썽거리는 뒤통수”는 정작 그런 갑을 대변하는 말은 아닐는지. 허상을 진실로 둔갑시켜 각본을 쓰는 사람. 거짓을 참보다 더한 참으로 말재주에 능한 사람. 그러한 사람이 난무한 세태를 풍자하는 시인의 뒤통수에서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읽는다. 관계란 결국 먼저 말을 꺼내거나 흘리는 사람의 잣대로 해석되어 갑을관계가 형성되기도 하다는 것을 새롭게 새긴다. 그러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진정한 을에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로 서투른 위로를 전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얼굴색을 바꾸며 뒷담花를 피우는 사람아, 그 입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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