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과 조국
안희정과 조국
  • 경남일보
  • 승인 2019.10.1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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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재(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회장)
정승재<br>
정승재

득표 차이가 적지 않았지만 현직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후보경선 전당대회에서 2위로 등극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 재판이 지난달에 끝났다. 납득되기 힘든 추문이 재판을 통해 속속 드러났고, 1심의 무죄에서 2심은 법정구속에 징역형으로 반전되어 최종심인 대법원 판결로 유죄가 확정되었다.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이 죄형이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집권당의 차기 대권후보 중 가장 강력한 위세가 나타났을 것이다. 정교한 언어구사에, 출신지역의 독특한 억양과 함께 저항감 없는 언변이 매력을 더했다. 여기에 선후배에 어필한 적절한 범절은 경쟁력으로 읽힐 만큼의 정치적 자산으로 평가받았다.

‘성 인지 감수성’

이 재판을 거치는 동안 새로운 법률 용어가 생겨났다. 이름 하여 ‘성 인지 감수성’이다. 꼭 같지는 않지만 2-30년 전 부터 인권의식이 활발한 서유럽이나 미국에서 정착된 ‘젠더 감수성’과 유사한 것이다.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배경으로 하는 남녀 간 성별에 대한 인식, 혹은 그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시책의 근원으로 작용했다. 우리의 경우, 이 인식이 선진화됐거나 모범사례가 풍부하다고 말하기 힘든 형편에 있다. 역설적이지만, 안희정 한 개인의 불행한 사례가 그 인식을 보편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신분, 즉 직급차이와 양자의 직무 성격에 근거하여 범죄행위로 밖에 해석될 수 없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온갖의 극단적 논란을 양산하면서 ‘사태’로 변질시키고 이틀 전 사퇴한 법무부장관 행태를 살펴본다. 그의 성명조차 더 옮기기 꺼려진다. 배우자의 피의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압수수색 중에 현직 장관이 현장을 지휘하는 검사와 통화했다. 범인(凡人)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 통화가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사실을 두고, 인사권자인 장관이 느끼는 형편과 그 장관의 판단에 따라 보직이 변경될 수 있는 검사의 사태 감지는 같을 수 없다. ‘직무인지 감수성’이라 말하겠다. 실제로 당사자는 부적절한 통화였다고 술회했다. 검사는 검찰청 소속이지만 그에 대한 인사권은 전화를 건네받은 법무부장관에 있다.

압수수색을 당하는 배우자의 심신에 대한 우려가 있었음은 당연하다. 사람이면 그렇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못한다. 법무부장관으로서 ‘관여하거나, 방해하기 위한 어떠한 지시도 없었다’ 는 취지의 소명에 뭇 대중이 발끈했다. 수사대상인 피의자가 담당 검사를 면전에 두고, 배우자라 하여 수화기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하는 강한 의구가 든다. 법치를 흔드는 있을 일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직무 인지 감수성

인사권자가 자신의 성적욕구 해소 대상으로 자신의 비서를 마음대로 농락한 사실을 두고 두사람 간 느끼고 인지하는 감수성은 동일하지 않다는 사례와 판이하지 않다. 따라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생경한 법률용어가 생겨난 것처럼, 앞으로 직권남용과 다른 의미로 ‘직무인지 감수성’이라는 법률용어가 만들어 질 것이다. 먼 시간 이후가 아닌, 곧장은 아니라도 2-3년안의 재판과정에서 형성될 소지가 있다.

지난날, ‘상전’이나 ‘웃사람’ 허울로 직급이 낮은 사람에 대해 몰인격, 비인권 수준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예사롭게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세상이 달라졌다. 그런 감수성에 둔감한 것은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한참 비껴난다. 그 부당한 일탈에 구질한 변명, 성찰없이 본질을 굴절시키는 비겁함도 속을 매스껍게 만든다. 한때의 지도자 반열에 있었던 두 사람의 공통분모가 분명해 보인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을 떠올리게 하는 위선이 그것이다. 이성인 비서를 농락하고도, 사랑과 연정(戀情)을 호소하면서 법망 탈출을 감행했다. 생동하는 권력을 업고 현장에 있던 검사와 통화하면서 배우자로서의 책무와 인륜을 들먹였다. 이율배반의 천부적 모습에 실색된다.

 
/정승재·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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