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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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9.10.1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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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김춘복의 성장소설 ‘토찌비 사냥’(5)

친구가 보여준 육필시집에 감동
매일 시를 쓰기로 결심하고 실천
자필시로 ‘가죽 장갑’ 시집 꾸려내
재치있는 소설가 선생의 추억도
부산동중학교(나중 부산중학교) 재학생 때였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아무리 시골 구석에서 교과서 밖에 모르고 자랐기로서니 중학교에 입학하 나서야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는 글들이 사람에 의해 씌어졌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으니 말이다. 요즘과는 달리 당시 국어교과서에는 지은이의 이름을 일절 밝히지 않기 때문에 인쇄기가 자동적으로 척척 박아내는 줄로만 알았지 시인이며 소설가라는 별종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누구나 시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2학년 초였다. 어느날 뒷자리에 앉은 이용목이란 친구가 펜글씨로 아주 정성스레 쓴 ‘오륙도’라는 육필시집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표지 장정이며 목차며 서문이며 서지사항에 이르기까지 시집으로서 갖춰야할 모든 요건을 완벽하게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수록된 7십여편 시들이 감동적이었다.

도대체 이용훈이란 사람이 어떤 분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제 사촌 형이라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우리 학교 3학년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는 그날 예의 시집을 집으로 빌려가 밤을 새우다시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러자 새벽녘이 되자 어떤 충동이 발동하면서 나도 모르게 펜대를 잡게 되었다. 동이 틀 무렵에 시 한 편을 꾸려 등교하던 길로 이용목에게 보여 주었더니 깜짝 놀라며 소질이 아주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하루에 한 편씩 시를 쓰기로 작심하고 제 아무리 숙제가 많은 날에도 그것부터 이행했다. 때때로 숙제를 해가질 않아 호되게 벌을 받은 적은 있지만, 등교하자마자 나의 신작시를 감상하러 몰려드는 팬들을 실망시킨 적은 없었다. 그리하여 두어달 뒤에는 나도 ‘가죽 장갑’이라는 제목으로 육필시집 한 권을 꾸려낼 수 있었다.그때의 기쁨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국어시간에 소설가이신 오영수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경남여고에서 전근해 오신 것이었다. 교과서에 ‘윤이와 소’라는 콩트가 수록되어 있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나의 우상이 되고도 남았다.

며칠 뒤 부암동에 있는 선암사로 전교생이 봄소풍을 갔을 때였다. 검정 베레모에 꽁무니에 흰 수건을 찬 것도 이색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가방 안에 든 물건이 궁금했다. 이윽고 ‘장기자랑대회‘가 열렸을 때 사회를 맡은 3학년 형의 지명과 동시에 학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앞으로 나간 오선생님은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커다란 바가지에 길쭉한 자루가 달린 물건을 공개했다. 여기 저기에서 만돌린이다, 만돌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회자가 무슨 노래를 부르시겠느냐고 묻자 오선생님이 사뭇 진지한 어조로 대답했다.

“에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를 부를 거야” 과연 어떤 노래일까…?

학생들은 저마다 호기심이 가득찬 눈빛으로 잔뜩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막상 만돌린이 튕겨내는 청아한 멜로디를 듣는 순간 완전히 의표를 찔린 전교생의 입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리곤 이내 박수로 장단을 맞춰가며 오 선생님과 함께 가수 현인의 ‘신라의 달밤’을 합창하기 시작했다.

“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 온다. / 지나가는 나그네야 / 걸음을 멈추어라./ 고요한 달빛 어린 / 금오산 기슭 위에서 /노래를 불러보자. / 신라의 밤 노래를….”

나도 커서 소설가가 되리라. 나도 장차 교직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쓰리라. 이렇게 결심하고 그날부터 닥치는 대로 읽고 썼다. 그 당시에는 요즘의 포장마차처럼 길거리 요소마다 학생증을 담보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책을 대여해볼 수 있는 대본점들이 흔했다.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 ‘고향 산천’, ‘새벅길’, 김래성의 ‘진주탑’, ‘청춘극장’, ‘마인’ 등을 읽으며 꼬박 날밤을 새우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읽다가 압수당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선생님들의 말은 한결 같았다. “소설을 읽으려면 제대로 된 본격소설을 읽어야지 이따위 통속소설을 수업시간에 읽다니, 한심한 녀석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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